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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신학>에 대해

Sr.Julia 2007. 3. 14. 18:10
 

주일, 주님의 날

                                                                   (정의철 저)


 주일은 “주님의 날”(묵시1,10)로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중심이다. 그러나 물질주의의 만연과 가치관의 변화 등으로 종교심이 약화되었고 산업사회의 발달에 따른 경제성장과 주일 노동 교대제로 주일의 의미가 크게 감소되었다. 또한 주말의 유흥과 관광도 주일을 거룩히 지내는데 저해 요인으로 등장한다.

 교회는 이런 상황에서 주일의 의의와 중요성을 가르치고 이끌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1. 주일에 대한 명칭

1) 주간 첫째 날

 주일에 대한 가장 오래된 명칭은 “주간 첫째 날” 로 빛과 어둠을 구별하는 창조의 첫날에서 유래된다. 예수님의 부활로 주간 첫째 날에 새로운 빛이 솟아올랐다.

2) 주님의 날(주일)

 그리스도교적 명칭인 “주일”은 로마 전례에서 매우 자주 사용되었다. 특별히 이 명칭은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는 날을 다루고 있다.

3) 여드렛날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유래한 것은 “여드렛날”이다. 하느님께서 6일간 창조사업을 마치시고 이렛날 쉬셨던 안식일 후 그 다음날인 부활날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여드렛날이다. 그날은 새로운 시작과 가장 위대한 창조를 나타내고 있다.

4) 부활날 (파스카날)

 부활날은 3세기 초 처음 테르툴리아노의 저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 비잔틴 교회와 연관된 이 명칭은 주일과 주님의 파스카 사이의 연관성을 뚜렷이 보여준다.

5) 태양의 날

 2세기 중엽 희랍-로마에서 ‘태양의 날’ 명칭이 사용되었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빛, 태양으로 보았다. 태양의 상징주의는 주간 첫째 날에 빛의 기원을 두었던 창조 기사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해석에서 암시되었다.


이러한 여러 명칭 중에 주일에 대한 교회의 공식명칭은 “주일”을 가장 선호한다.


2. 주일 전례 거행에 대한 초기 증언의 역사

1) 신약성서

 신약성서는 주일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 가지 언급을 하며 초기 3세기 교부들의 주일 신학의 토대를 이룬다.

 4복음서들안에서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대한 기사는 예수님께서 주간 첫째 날에 부활하시고 제자들과 여인들에게 나타나셨다고 전한다. 부활과 발현 기사들은 이 특별한 날에 모인 공동 집회의 사실과 함께 주일 역사에 중요한 증언이 된다.

 1고린 16,2에서 바오로 사도는 “주간 첫째 날”에 각자는 예루살렘을 위해 헌금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주일이 애덕을 완성하기 위해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신약성서가 주일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는 것은 그날에 특별한 의미 -부활하신 날, 부활하신 주님께서 예루살렘 공동체에 나타나신 날, 바오로 사도의 어느 공동체가 빵을 나누기 위해 서로 모이고 특별히 예루살렘 모 교회에 대한 애덕을 기억하던 날, 예언적 현시를 받던 날-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2) 교부들의 초기 전승

 교부들의 초기 전승은 주일에 대한 규정들을 더 명백히 발전시키는데 가장 오래된 전승은 디다케로, ‘주님의 주일’에 전례적인 집회가 있었음을 언급한다.  3세기 디다스칼리아 문헌에도 주일 집회의 중요성이 바로 그 집회 참여 전에 회개를 필요로 한다고 언급한다. 또한 주간 첫째 날에 기쁨 안에서 모든 것을 보내야 한다고 언급한다.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는 안식일의 폐지에 대해 강조하고 있으며 비티니아의 총독인 플리니오의 편지에도 그리스도인들의 새벽집회와 저녁 집회가 있었음을 증언한다. 3세기 테르툴리아노는 주일이 그리스도교 예식의 중심이고 그날 주님께서 부활하셨기에 예식을 거행하는 가운데 성화되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치프리아노는 주일과 안식일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 ‘여드렛날’이라는 신약성서의 전승을 사용하면서 부활사건으로 성화된 주일을 언급한다. 2세기 바르바나 편지는 새로운 창조의 시작을 거행하는 차원에서 여드렛날의 특성을 묘사하는 기쁨을 강조한다.

 3세기 초 클레멘스는 첫째 날이 빛의 창조 날이라는 사실로부터 주일 신학을 발전시켰다. 오리게네스는 우리의 성화와 구원을 실현시키는 것은 ‘여드렛날’에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부활이며 주일 거행은 하느님께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는 구원 선물에 대한 기념이라고 한다. 유스티노는 2세기 그의 저서에서 주일을 ‘태양의 날’이라고 불렀고 유다-그리스도교 용어인 ‘첫째 날’과 ‘여드렛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이날의 중요성을 예수님의 부활에  토대를 두었다. 히폴리토는 입문 성사가 주일에 거행되었으며 정규적으로 성찬례가 거행되었고 주교는 주일에 서품되어야 한다고 증언한다.

3) 4세기 이후의 발전 역사

 주일 전례 거행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콘스탄틴 대제가 321년 공포한 첫 번째 법에서 주일을 ‘공경하올 태양의 날’로 정하고 모든 유다인들과 도시민, 노동자들에게 휴식의 날로 선포하는 것이다. 이런 법률들로 주일의 전례 거행은 촉진되었으며 사회적인 일들과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위안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주일을 태만히 하는 남용하는 위험성이 생기게 되었다. 콘스탄틴의 법은 노동으로부터의 휴식이 항상 주일 성화의 중심에 오도록 하였다. 주일에 육체노동을 하는 것은 국가법이나 교회법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었고 항상 엄격한 방법들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런 방법으로 주일이 구약 안식일 법의 연장이라는 인상이 더욱 굳어졌다.

 중세에 들어오면서 유다 안식일 법에 근거를 두고 육체노동을 금하는 사례가 많아졌고 주일을 새로운 안식일, 노동 금지일로서의 특성을 강화하면서 성서와 초기 교부들이 언급하고 있는 부활 기념일로서의 원초적인 의미가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


3.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오늘날의 주일

 주일 거행에 있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파스카 신비 거행으로서의 주일의 의미를 명백히 부각시켰다. 전례헌장106항은 사도시대의 전통, 그리스도의 부활 기념, 여덟 번째 날, 주님의 날, 태양의 날, 세례의 기념, 말씀과 성찬을 위한 모임 등  성서와 초기 교부들이 주일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회상하면서 주일 신학의 총체를 이룬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부들은 원초적인 주일 신학으로 환원하여 주일은 무엇보다 부활하신 주임의 기쁜 날임을 분명히 하였고 집회(모임), 말씀을 들음, 성찬례 거행이 중심 요소가 되어야한다고 말한다.

 전례헌장은 파스카 신비 거행의 관점에서 주일은 전례주년 전체의 기초요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주일 신학의 풍부한 전례적 완성은 ‘독서집’과 ‘미사경본’에 잘 나타나는데 성찬례 안에서 말씀 전례를 강조하면서 3년 주기의 독서를 제공하며 이로써 하느님 말씀의 선포와 설교가 주일 신학과 거행에 있어 중심요소임을 드러낸다. 미사경본의 옛 전통에서 이끌어 내어진 새 감사송과 새 성찬 기도문은 주일 신학에 있어 중요한 성격을 제시한다.


4. 주일에 대한 사목적 고찰

 주일의 의미와 중요성을 신자들에게 깨우쳐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할 것이다. 공동체의 모임은 일치가 전제되어야 한다. 교회(Ecclesia)라는 명칭이 그러하듯이 일치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제시되어야 한다. 또한 주일미사의 봉헌도 단지 물질적인 봉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봉헌도 뒤따라야 한다.

 주일 휴식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즐거운 휴식이라는 의식이 고취되어야 한다. 또한 단순한 예배적 차원을 넘어서 복음을 묵상하고 영신적 생활의 진보와 말씀의 선포, 그리고 애덕(이웃 사랑)의 실천과도 함께 병행되어야 함을 강조해야 한다.


결론

 주일에 대한 성서와 교부들의 증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을 보았을 때 주일은 그리스도인 생활에 있어 근원적이며 핵심이 되는 날이다. 주일 성화는 성찬례(미사)에 참여하고 그리스도교적 기쁨과 형제적 사랑으로 가득 찬 휴식을 취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경건한 하루, 영성적으로 자신을 돌이켜 보는 하루, 영원을 향한 자기 삶의 지표를 재확인하는 하루, 자신과 가정이 함께 하느님께 감사하고, 하느님의 축복을 받는 하루가 되도록 하여야 하겠다.


                < 감사송 >

연중 주일 감사송1

 (파스카 신비와 하느님 백성)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저희는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

선택된 민족, 왕다운 사제, 거룩한 겨레,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고

저희를 어둠에서 놀라운 빛으로 부르신 주님의 권능을

온 세상에 전하게 되었나이다.

이는 파스카의 신비로 이루어진 주님의 위대한 업적이옵니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연중 주일 감사송 2

 (구원의 신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 많은 인류를 가엾이 여기시어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시어

저희를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셨으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모든 천사와 함께

저희도 땅에서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연중 주일 감사송 3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 구원)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의 무한한 영광을 보여주셨으니

그리스도의 천주성으로 죽을 운명을 지닌 인간을 도와주시고

그 인성으로 저희를 죽음과 멸망에서 구원하셨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사들의 무리가 영원히 기뻐하며 주님의 영광을 흠숭하오니

저희도 그들과 함께 기쁨에 넘쳐 찬미하나이다.



연중 주일 감사송 4

 (구원의 역사)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탄생하시어 인류를 새롭게 하시고

수난하시어 저희 죄를 씻어주시며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마련하시고

아버지 계신 곳에 오르시어 천국 문을 열어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주님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연중 주일 감사송 5

 (창조)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계절이 갈마들게 마련하셨나이다.

그리고 사람을 주님의 모습 따라 지으시고

창조하신 만물을 모두 맡기시어

주님 대신에 다스리게 하시고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의 위대한 업적을 언제나 찬양하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연중 주일 감사송 6

 (영원한 파스카의 보증)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저희도 주님 안에서 숨쉬고 움직이며 살아가오니

이 세상에서 날마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체험할 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고 있나이다.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일으키셨으니

성령의 첫 열매를 지닌 저희에게도

부활의 신비가 영원히 이어지리라 희망하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저희도 모든 천사와 함께 주님을 찬미하며

기쁨에 넘쳐 큰소리로 노래하나이다.


연중 주일 감사송 7

(그리스도의 순종과 우리의 구원)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세상을 더 없이 사랑하시어

그리스도를 저희에게 구세주로 보내주시고

죄 말고는 저희와 똑같은 처지에서 살게 하셨나이다.

그리하여 성자를 사랑하셨듯이 저희를 사랑하시고

저희가 순종하지 않아 죄를 지어 깨뜨린 계약을

성자의 순종으로써 다시 맺어주셨나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와 성인과 함께

저희도 기쁨에 넘쳐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연중 주일 감사송 8

 (삼위의 일치와 교회의 일치)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아버지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흩어진 인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