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바오로 - 엘그레코
그림속의 바오로 (1)
루돌포 파파 교수
(미술사가, 교황청 예술과 문학 연구 분과 위원회 위원)
성바오로, 엘 그레코 1580-1586, 마드리드
방안에 그리고 작은 책상위에 놓은 책, 잉크와 펜 사이에 표현된
젊은 성 바오로는 흥비롭기 그지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엘 그레코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위대한 화가 도메니코스 테오토로풀로스의 작품으로
채스토나 온천도시의 이라타 수도원에 있으며 나로스의 마르케사 소장품이다.
외견상 단순해 보이는 구성은 사도 바오로의 복합적인 인물 성격 가운데
어떤 점을 표현하는 구실을 한다.
실제로 바오로는 그에 대해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온 이콘과
소품들인 책, 칼, 붉은 빛의 겉옷과 3-4세기 체사레아의 에우세비오가 바오로에 대해
기록한 신체적 특성에 따라 숱이 적은 머리와 검은 수염을 지닌
키가 작은 남자로 그려져 있기는 해도
여기서 더 나아가 이 인물을 하나의 건물 공간안에 배치함으로써
화가가 강조하고자 했던 언뜻 보기에 놓치기 쉬운 궁극적인 무언가가 있다.
배경에는 화면구성적인 이유 그 이상의 또다른 이유,
이를 테면 순수하게 예술적이고 형식적인 행위를 넘어서는 이유가 있다고 하겠다.
물론 명암으로 표현된 건축물의 구도분할은 인물 얼굴 주위에 어두운 윤곽을 만들어내고,
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나 매너리즘 적 모델로 환원시킬만한
예술 전통에서 추구하는 것처럼 인물을 보다 더 두드러지게 한다.
그러나 계단과 문은 다른쪽으로 열려져 시선을 바오로 얼굴에서 출구 바깥까지,
곧 한눈에서 파악이 안되는 다른 장소로 이끌어낸다.
그림을 보다 더 관찰하면,
바오로가 왼손을 자기 앞에 있는 펼쳐진 책위에 올려놓아
마치도 본문을 엄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니, 엄지 손가락이 본문에서 문자 그대로 강조하는 있는 어떤 부분을
정확히 가리킨다고 볼 수 있겠다.
책이 그려진 형태는 기술적인 면에서 이후 후기 매너리즘과
1600년대의 화풍에 전형적으로 쓰인 수법에 가깝다.
곧 인쇄된 페이지의 효과를 내기 위해, 단순하게 회색조의 수평선을 대략적으로 반복하고,
인쇄효과를 주면서 끝부분에서 큼직하게 흰 여백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참되고 고유한 인쇄의 특징을 담고 있지는 못하다.
그림의 관찰자는 어떻게 이 구성을 통해 그러한 효과를 만들어내며
책이 마치 본문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 그림의 일반적인 수법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나 확대경으로 이 그림을 본다면,
엄지 손가락 가까이에 VIA, 또는 VIAE라는 단어를 구성하는 몇가지 문자에 이어
이보다 더 불확실하기는 해도 MIROS나 VIROS라고 여겨질만한 아주 유사한 문자들을
알아볼 수가 있다.
만일 이러한 추측이 올바르다면, 이는 내 생각대로 불가타본의 사도행전 9장의 몇구절,
정확히 말해서 1-2절에 해당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곧 다음과 같은 구절이 된다.
"사울은 여전히 주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살기를 내뿜으며 대사제에게 가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회당들에 보내는 서한을 청하였다. 새로운 실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남자든 여자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바오로의 엄지 손가락이 머무른 본문은 정확히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을 찾아내기만 하면,"에
곧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단어(huius)가 놓은 자리인
"그의 추종자들을 체포하기 위한 목적으로" 에 놓여있게 된다.
그러므로 이 본문은 사울이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이들을 붙잡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오려고
쫓아가고자 다마스커스를 향해 출발하고 있음을 묘사한다.
그러나 그림에서 성 바오로는 그가 다가간 장소가 실은 바로 물러난
그 장소임을 오른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그의 감동에 찬 시선은 마치 부끄러운 모양새로 살짝 기울인 머리로 인해 보다 강조된다.
그러므로 여기서 알수 있는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길을 따르는 이들을 추격하러 가는 도중에
바로 그 길에서 그리스도에 의해 사로잡히게 되었다는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자신이 정복되었다는 것,
그 결과 그분의 이름을 전하러 세상을 향한 길을 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결국 엘 그레코가 그린 문은 분명 바오로가 이 장소에 도달하기 위해 통과한 문이지만,
또한 그리스도가 마음안으로 들어간 영혼의 문이기도 하다.
바오로는 추종자로 면모된 박해자, 구세주를 알아보지 못했기에
제자들안에 계신 그분을 박해했던 사람이었지만
이제 자기 이름을 부르시는 분과의 만남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의식하게 되고
바오로(바울로스) 곧 '작은 자' 라고 부르게 된 그의 역설적인 실존으로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이 문은 그림의 진정한 주제로서 우리 시선에 들어오게 된다.
왜냐하면 문이 그리스도 자신의 이름이며, 이 문을 통해서 사울이 교회에 들어오고
다른 길로 주님을 찾으러 애쓰던 도중 그분의 직접적인 부르심으로
사도 바오로가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