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자전거도둑(1948)
<자전거 도둑> 이탈리아
자전거 도둑
1994년
1. 네오리얼리즘
2. 비토리오 데 시카
3. 자전거 도둑 감상
1. <네오리얼리즘> 에 대하여
네오리얼리즘(neo-realism) 이라는 용어의 정확한 기원은 알수 없다. 다만 1940년대 초 이탈리아의 비평가들이 일상적인 영화의 관습에게서 탈피 하고자 하는 영화작업을 묘사하면서 이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사실적인 이탈리아의 영화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실제 사건이나 몇 가지 사건들의 결합, 또는 대표적인 사건에 토대를 두었다. 즉 그것들은 허구적인 토대보다는 오히려 사실에 입각한 토대위에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어떤 영화는 타이피스트 일자리를 지원하러 온 수 백명의 젊은 여성실업자들의 무게를 못 이겨 층계가 내려앉는 실제적인 상황, 또 연금으로 사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노인의 상황과 같은 전형적인 것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영화들에 의해서 처리된 문제들은 어느 정도 긴박함과 폭넓은 관심의 대상을 갖고 있었다. 그 영화들의 주제는 그러한 예술작품들이 그렇듯이 언제나 보편적이고 영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기록영화처럼 그 접근 방법에 있어서 심리적인 만큼이나 사회적으로도 지금 그리고 여기에 더욱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주된 관심사는 가난, 매춘, 점령군에의 협력과 저항, 착취적 농업 조건들 등이었다.
이러한 종류의 작품들은 그들이 다루는 사회적인 문제와 개인적인 성격, 갈등에 부여한 관심의 정도에 따라 분류되었다. 인물들의 문제를 융합시키려는 노력도 행해졌다. 역할들도 그 인물의 성격이 어떤가가 아니라 그들이 한 것, 또는 하지 않은 것이라는 입장에서 창조 되었다. 그 문제의 다양한 국면들은 개인들에 의해 재현되었으나 그것의 사회적인 본질은 늘 전면에 부각되었다.
이것은 또 다른 방법으로 보면 플롯은 하나지만, 등장인물은 여럿이고 그들의 성격은 순수한 극영화에서 보다 충분히 드러나지 않으며 주제와 이념을 매우 솔직히 구체화하곤 한다. 갈등과 해결은 상호 인간관계로부터 보다는 더 확대된 상황으로부터 나온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영화들 속에서 등장인물과 그들의 삶은 의도적으로 이데올로기를 표현하기위해 사용한다.
또 이러한 영화들에서 영화를 만드는 방법은 극영화와 기록영화 양쪽 모두로부터 나온다. 그것들은 전통적인 극영화보다는 연기와 대사에 덜 의존한다. 직업배우들이 주요한 배역으로 나올 때도 있지만, 종종 비직업적인 배우들이 덜 중요한 배역, 그리고 엑스트라로 , 심지어는 주연배우로도 나오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는 스타들을 피하기도 한다. 때때로 조작을 가하지 않은 찍힌 그대로, 또는 뉴스릴 필름이 사용된다. 종종 해설이나 몽타쥬, 지도 같은 것들이 더 폭넓은 영역을 제시하고 좀 느슨하게 짜여진 플롯을 의미 있는 것으로 강화시켜 준다. 조명, 의상, 분장, 세트들은 실제적인 것이거나 양식상 자연스러운 것이다. 편집은 보통 극영화보다 덜 부드럽고 주제가 요구하는 바에 따르며, 커팅 속도 역시 아주 빠르다. 실제 소리들이 강조되고 의고적으로 만들어진 무게 있는 음각의 사용은 지양된다.
네오 리얼리즘의 영화에서는 흔히 사건의 뒷이야기나 원인에 따른 결과는 우리에게 보여지지 않는다. 네오 리얼리즘 영화의 애매성은 또한 마치 현실의 총체성이 모두 알려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듯, 사건에 대한 전지적 지식을 창출하기를 거부하는 서사화법의 산물이다. 이점은 그들의 결말을 통해서 보다 분명해진다.
<자전거 도둑>은 주인공인 아버지와 아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자전거를 찾지 못한 채 거리를 배회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들의 미래가 불확실한 채로 말이다.
네오리얼리즘의 삶의 단편으로 이루어지는 플롯구성과 비제한적 서사화법의 경향은 이 사조에 속하는 많은 영화들에 헐리우드의 폐쇄된 서사구조와는 대조적인 열린 성격을 갖게 하였다.
경제적, 문화적인 요인들이 네오리얼리즘 운동을 유지시켜온 힘이었듯이 그것들은 또한 이 운동이 종식되는 주요 요인이 되었다. 전후 이탈리아가 다시 번영을 맞기 시작하자 정부는 당시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영화들을 규제하기 시작했다. 1949년 이후 검열과 정부의 압력이 네오 리얼리즘 운동을 규제하기 시작하였다.
또 네오 리얼리즘의 감독들도 보다 개인적인 관심사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하층계급과 빈곤으로부터 상층계급과 그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현대 생활을 좀먹는 많은 불만족스런 가치들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그렇지만 네오리얼리즘의 실제와 이론은 계속 존재해왔고 그 영향은 초기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2. 비토리오 데 시카
비토리오 데 시카는 문자 그대로 네오 리얼리즘의 거장이었다. 우리나라에 수입된 <구두닦기>(46년)이나 <자전거 도둑>(48년) 등은 전후 이탈리아의 황폐한 거리를 무대로 하고 비전문적인 배우를 등장시켜 다큐멘타리적인 수법으로 이른바 네오 리얼리즘의 영화미학을 확립시킨 작품이었다. 이 때의 데 시카는 주로 전후 사회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으로, 부랑아에 대한 사회적인 문제가 <구두닦이>에서, 그리고 전후 사회의 황량한 인정 등이 <자전거 도둑>에서 취급되었고, 주택문제에 대한 고충이 <옴베르토 D>(52년)에서 나타났다. 또 이것을 거쳐 또 하나의 주택문제에 관한 고민이 <지붕>(56년)에서 등장했으나 이때부터 그의 작품은 밝은 햇살을 담게 되었다. 이것은 네오 리얼리즘이 한 시대의 소산임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이다.
전후 14년이 경과한 이탈리아는 차츰 사회가 안정되어 갔고 따라서 의식주에 대한 실생활 문제가 나아졌다. 이에 따라 나치나 파시즘에 대한 격렬한 증오도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따라서 사회적 현실에 가장 민감한 이탈리아의 예술가들도 그 영향을 받은 것 같다. 네오 리얼리즘의 감독 중에서 가장 줄기차게 전후 사회문제를 다루었던 데 시카가 차츰 변모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이탈리아에 대한 애착이 강하며, 이탈리아의 토속적인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작가이다. 국가애가 지독한 작가이다. 그가 전후 이탈리아의 사회를 맨손으로 고발한 것도 이런 태도에서였으며 최근에는 <보카치오 70>이나 <어제 오늘 내일>(64년) 또는 <이탈리아식 결혼>(64년)등의 경쾌한 풍토적 서민희극에 몰두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데 시카가 영화 작법상에 남긴 공로는 에이젠슈테인이나 그리피스 또는 꼭또에 못지 않다. 전위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 극히 다큐멘타리적인 방법으로 네오 리얼리즘이라는 형식을 완성했다는 것은 후세에도 기억될 일이다. 데 시카는 사상이나 이념의 작가는 아니다. 따라서 난해한 곳도 없다. 극히 평범하지만 이탈리아의 참모습을 찾아 헤맨 극히 이탈리아적인 작가이다.
3. 작품 감상 : <자전거 도둑>
이 영화는 꼭 다큐멘타리를 보는 것과 같았다.
실업자들이 첫 장면부터 몰려나온 것이 왠지 싫었다. 처음부터 우울한 장면들이 펼쳐지는 것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감정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계속 끝까지 보면서 왠지 우리나라의 옛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해방과 6.25전쟁후의 우리나라의 모습과 비슷할 거라는 것에서 약간의 친근감을 느꼈는지도 모를 것이다. 또 전쟁후의 어렵고 비참한 현실까지 같다는 것, 우리나라의 어려운 시절을 회상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영화에 대해서 약간의 거부감과 동시에 친근함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자전거 도둑>은 가장 단순하고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상황을 다루고 있다. 얼마간 일할 수 있는 최초의 기회를 갖게 된 실업노동자가 일하기 위해 자전거를 마련한다. 일자리를 가진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그것을 위해 필요한 자전거를 마련할 돈이 없다. 그래서 그의 아내 마리아는 침대커버를 팔고 그 돈으로 힘겹게 자전거를 마련하게 된다.
그 다음날 그의 집에서는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포스터를 붙이는 일을 하는 아버지와 그의 아들은 자전거를 타고 자신들의 일터로 향한다. 아들과 저녁에 만나기로 하고 아버지는 어리숙한 솜씨로 도시의 이리저리로 포스터를 붙이고 다니지만, 자전거를 도둑맞고 만다. 갑자기 간신히 얻은 일자리를 잃은 허탈감 같은 것이 몰려왔다. 자전거를 도둑맞은 아버지는 미친 듯이 도둑을 쫒아가지만 도둑의 패거리가 그를 방해한다.
꽉꽉 들어찬 버스 속에 간신히 몸을 실은 아버지는 아들을 만나러 간다. 아침의 활기도 잠깐, 이제부터 이 영화는 계속해서 우울한 분위기로 가게 된다. 자전거는 어디 있느냐는 아들의 물음에 아버지는 어물거린다. 답답한 마음에 사이비 점장이에게도 찾아가 보지만 그래도 자전거는 행방불명이다. 할 수 없이 그의 친구들에게도 부탁을 하지만 자전거는 찾지 못한다. 마침내 아버지와 아들은 자전거를 훔쳐간 젊은이를 찾아내지만 아무런 혐의도 찾지 못하고 허탈하게 되돌아온다.
축구장 근처의 광장에는 수많은 자전거가 있다. 그 자전거를 보고 있던 아버지의 얼굴이 초조하게 변한다. 아들에게 먼저 가라고 한 후 아버지는 광장 한 켠에 있는 자전거를 훔치지만 자신의 자전거를 훔친 도둑과 같이 능숙하진 못했다. 곧 경찰과 사람들에게 붙잡히고 그런 모습을 아들에게 보이고 만다. 자전거 주인은 그를 풀어주고 눈물을 흘리는 아버지와 아들은 터벅터벅 로마의 거리를 걸어가면서 이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야기 자체는 굉장히 단순한 줄거리이다.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들의 솔직한 연기가 계속 스크린에 눈을 고정시킨다. 이 영화에서 아버지의 역에는 실제로 거대한 브레다 철공소에서 일하고 있는 기계공이 맡았고, 그의 아들 역할을 한 소년은 로마의 신문배달 소년이었다. 어쩌면 이 점이 실제 영화배우보다 더 우리를 영화에 빠지게 원인이 되었다.
난 특히 영화의 마지막 부분이 가장 인상 깊다. 자전거를 훔치려다 경찰에 붙잡혀 아들에게 못 보일 것을 보인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가 안스러워서 어쩔 줄 모르는 아들. 이 두 사람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는 데 충분했다. 만약 이 뒷 장면이 이렇게 끝나지 않고 자전거를 되찾았거나, 그 도둑을 잡고서 끝났다면 지금 같은 감동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가슴 찡한 감동으로 50년이라는 지났어도 지금까지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1994년 영화론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