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조선조 사회와 가족-신분상승과 가부장제 문화』, 이이효재 지음
이이효재 지음, 한올, 2003
가족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관련 책과 논문들을 읽기 시작하면서 조선 왕조 500년이 한국의 가족사회학 영역에서 큰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가족 형태와 삶의 방식이 조선 이전과 조선 이후에 많이 달라졌음에도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조선시대의 가족을 ‘전통적 가족’으로 인식한다. 조선시대의 가부장적 가족문화가 근대화를 거치면서 더 견고해졌고 최근에까지 남성부권을 중심으로 하는 가부장제 가족 형태가‘자랑스러운 미풍양속’인 전통문화로 여겨졌다. 그러나 21세기에 접어들어 한국사회는 IMF 체제 시기를 보내고 전지구화와 같은 정치, 경제, 사회적 이슈가 몰아치면서 전통 가족과 가부장적 제도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가족은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담론들이 제기되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거론되고 있는 가족 해체와 위기에 대한 담론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알고, 변화와 해체의 대상이 된 가족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가족제도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특히 조선 시대 이전과 이후에 가족 제도가 변화되었다면 조선의 어떠한 사회적 문화적 배경하에서 가족제도가 형성되었는지를 아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이유로 찾아 읽게 된 책이 바로 이이효재 선생님의 <조선조 사회와 가족-신분상승과 가부장제문화>이다. 책이 나온 지는 10여년이 지났지만, 저자가 6-7년이라는 긴 연구기간에 걸쳐 사학계의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조선시대 가족과 가부장제도를 사회학적, 여성학적, 가족학적으로 정리, 분석한 한국 가족사회학에서 의미 깊고 중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장의 간략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장‘유교적 양반사회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서 저자는 조선왕조 500년이 한국적 가부장제를 완성시킨 시기라고 말한다.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온 남녀 균등의 친속관계, 혼인과 가족관계 관습은 조선의 유교적 종법문화 아래 강력한 남계 혈통의 가계계승과 종족 제도로써 확립되었다. 조선시대의 가부장제는 양반 신분의 혈통적 세습과 정치∙경제 권력의 유지확보를 위한 강력한 기반이었고 신유학의 명분론, 적장자 중심의 적계주의, 주자가례와 삼강오륜의 교육정책을 통해 봉건사회 위계질서를 강화하는데 이용되었다. 조상숭배를 위한 부계중심적 사회에서 여성은 남존여비의 가치관 아래 남자에게 완전히 예속된 존재였으며, 가족의 대를 잇는 아들을 낳아야 하는 수단적 존재로 전락하였다.
제2장‘신분계층별 혼인과 가족생활’에서는 신분계층에 따른 혼인, 상속, 가족생활, 노동, 조세납부, 경제생활 등을 설명한다. 조선 초부터 주자가례를 통한 혼인과 조상제사 의례를 강조했지만, 16세기까지 양반층의 혼인과 가족생활은 고려시대의 혼인관습, 처가살이, 친족형태의 영향을 받았다. 고려시대의 가족관계는 모족과 부족이 차별 없이 연대한 형태였고 동등하고 친밀한 부부관계였지만, 조선 중후기로 오면서 처족과 모족은 완전히 배제되었고 부부관계도 지배-복종의 가부장제 관계로 변화되었다. 17세기에 이르러서 부자계승의 직계가족생활과 시집살이를 하는 가부장제 가족 생활이 양반계층에 확고하게 정착하였다. 지배층의 여성은 충효열의 삼강윤리를 철저히 내면화하는 교육과정으로 현모양처가 될 것을 요구 받았다. 상민층은 양인확대 정책에 따라 가장 수가 많았고 농업, 군역, 공공산업을 위한 신역의 의무를 지고 있었다. 이들의 혼인과 가족생활도 조선 후기에 이르러 혼례와 조상숭배에 대한 상제례의식을 따랐다. 저자는 이를 사회적∙경제적 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양반층의 가부장제를 모방하고 내면화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상민층의 혼인도 남녀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결합이기 보다는 양천교혼(양인과 천민의 혼인)등과 같은 혼인 제도화와 정책으로 국가와 지배층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조선 후기에는 상민층의 생활이 양반 권세가에 예속되고 관리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리면서 점차 몰락의 위협에 처해졌다. 외거노비와 솔거노비로 나뉜 노비층의 가족은 근본적으로 불안정하고 생존 자체가 위협적이었다. 노비가족 구성원의 소유주가 제각기 달라서 주인들에 의해 분산되어 가족해체가 빈번하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노비에게 혼인과 출산은 주인의 재산증식이나 노동력 요구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가족 구성의 형태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제3장‘복합가족에서 직계가족으로’에서는 고려시대의 복합가족이 조선시대의 직계가족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고려시대 친족은 양측적 형태로 부계와 모계가 구분과 차별 없이 혈연관계가 존재하는 모든 계보상의 인물로 연결된 확대 복합가족의 모습이었다. 조선 초기에는 고려의 복합가족의 형태를 유지했지만 조선 중∙후기에 접어들면서 부계혈통계승에 의한 종족과 직계가족으로 가부장제적 가족의 모습을 굳혀갔다.
제4장‘신분상승과 가부장제 문화’에서는 17세기 이후 조선 후기의 신분 변화를 다룬다. 경제력과 재산을 가진 일부 상민층, 서얼층, 중인층은 신분제에 따른 무거운 군역과 요역을 피하고 관리들의 착취와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신분상승을 지향하였다. 이들은 납속과 공명첩을 통한 합법적 방법이나 도망, 은신, 모록을 통한 비합법적 수단으로 하층신분에서 해방되거나 양반층으로 유입되었다. 서민층도 교육과 교화정책을 통해 지배계층의 가부장제를 받아들였고 삼강오륜 질서를 확고히 하였다. 정표정책은 충신, 효자, 열녀가 나온 집안에 대해 부역과 잡세를 면제하고 표창하는 것으로, 집안의 명예를 높이는 동시에 상민과 천민층이 삼강 행실을 실천함으로써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정표정책으로 여성은 정절과 순종의 미덕을 더욱 강요 받았고 양반층에서부터 천민에 이르는 모든 여성은 삼종지도와 칠거지악을 내면화하면서 생활하였다.
제5장‘사회개혁과 가부장제의 변형’에서는 퇴계 이황에서부터 조선후기 다산 정약용과 실학사상가들이 가졌던 평등사상과 신분제에 대한 개혁 의지를 소개한다. 사회개혁을 위한 지배계층의 활동은 서민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실현하고자 하였지만, 유학적 뿌리를 고수하는 사상적 한계로 인해 사회개혁 운동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조선 말기 문호개방 이후 부패하고 무기력한 왕조의 체제모순은 더욱 심화되었고 결국 일제의 식민지 통치를 거치면서 조선시대의 가부장제도는 식민지배를 강화하는 목적으로 변형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 읽었던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에서 언급된 노동자 계급이 계속 떠올랐다. 생계를 위해 노동할 필요가 없는 귀족이나 부르주아 계층인 유한계급(Leisure Class)은 산업사회에서 사회적 명성과 품위를 보장하는 부를 과시하기 위해 과시적 여가, 과시적 소비로 금전과시 경쟁을 한다. 그리고 유한계급의 과시욕은 그들만의 특권이 아니라 전체 사회 계층으로 퍼져서 사회 하층민까지도 유한계급의 생활양식을 기준으로 과시적 소비에 빠지게 된다. <유한계급론>은 노동자 계급이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비판적인 의식을 가지기 보다 보수화되는 현상을 설명할 때 많이 인용된다. 조선시대의 가부장제도는 마치 유한계급의 생활양식, 소비양식과 비슷하게 보인다. 어느 시대에나 계급과 계층이라는 사회적 위계질서는 존재한다. 지배와 피지배, 상류층과 하층민이라는 불평등 구조는 사회마다 그 형태와 모습이 다를 뿐 거의 비슷하게 메비우스 띠처럼 연속되고 있다. 저자는 가부장제 문화가 다양한 계급 구성원과 하층 여성들에게까지 이르러 그들 안에 내면화되고 실천적인 제도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 같은 주장에는 사회 지배층의 억압과 착취에 비판적 태도를 갖고 대항하기 보다 오히려 기득권 문화를 습득하여 가부장제도를 더 확산시킨 피지배층에 대한 아쉬움이 함의되어 있다고 본다. 한국의 현대 사회 역시 조선 사회와 다를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단지 차이라고 한다면 뚜렷한 신분 계급의 형태가 아니라 경제적 부의 정도가 인간을 구분하는 척도가 되고 있는 점이다. 이런 점에 대해 누군가는 신분차별보다 경제적 부에 의한 구분이 더 민주적이지 않는가 라고 말한다. 어느 신분에서 태어날지는 자신 스스로 결정할 수 없지만 부를 쌓은 것은 노력에 의해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21세기 한국사회에서 과연 그럴까?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금수저, 흙수저 등의 구분이 말해 주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이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된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적인 것이며, 소수의 몇 명에게만 적용된 사회적 이슈일 뿐이다. 오히려 소수의 영웅적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은 가난을 개인의 능력부족이나 성향 탓으로 돌리고 사회적 모순을 덮고 차별적 사회체제를 유지하는데 이용될 뿐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조 사회와 가족>은 많은 insight를 제공한 책이다. 특히 가족과 가부장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가부장제도의 역사적 흐름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주었고 가족 안에 여성의 지위와 역할이 어떠한지를 알게 해주었다. 상민과 천민의 여성들 사이에 열녀와 효부의 미덕을 생명보다 더 중요한 가치로 관습화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가부장제 안에서, 가부장제에 의한, 가부장제를 위하여’ 존재한 여성들의 삶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모든 여성에게 일반화할 수 없지만, 가부장제 가족제도에서 충실히 살고 있는 여성의 모습은 비단 조선시대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도원 공동체에서 저녁을 먹은 후 주말 휴식시간에 가끔 드라마를 시청할 때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볼 수 있지만은 않다. 저녁 8시 주말 연속극은 대부분 가족 드라마를 지향하기 때문에 드라마에는 두세 개의 대가족이 꼭 등장하고 그 안에 다양한 가족관계가 얽히고 설키면서 만들어지는 내용이다. 등장하는 인물은 대가족의 가장인 아버지와 어머니, 결혼한 자녀들과 손녀, 손자들이다. 이들 가족 중에 대게 한 집의 아버지는 아주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다른 집은 여성을 존중하는 아버지가 등장하며, 어머니 역시 순종적인 모습과 자기 주장이 강한 힘있는 어머니 모습 등으로 상반된 성격을 보여준다. 여러 등장인물을 분석하다 보면 가족 이데올로기에 가장 충실한 사람은 이외로 아버지가 아닌 아들을 가진 어머니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한 가족의 며느리로서 대를 위해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의 며느리에게 자신과 똑 같은 역할을 맡기를 강요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부장적인 가족주의 확고히 하기 위해서 가족을 지키는 어머니와 새로이 가족문화에 들어오고 변화를 바라는 며느리 사이는 드라마가 구현하는 가족 관계 안에서 문제의 핵으로 자주 등장한다. 현재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들을 살펴 보더라도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흘러간 지난 시대의 얘기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이 책의 목적은 조선시대의 가족과 가부장제 문화에 초점을 맞추어 양반층 여성뿐만 아니라 노비층 여성까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내면화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을 조선의 신분사회와 연관하여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목적을 위해 다양한 역사적 사료를 통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아쉬웠던 점은 조선의 가족과 혼인 관습의 설명에 비해 고려시대와 그 이전 사회의 가족관계, 결혼에 대한 관습이 간략하게 서술된 면이 없지 않은 점이다. 이 책이 정해놓은 역사적 시기가 조선시대임은 분명하지만 조선시대의 가족관계와 혼인 관습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고려와 이전 사회의 가족생활이 지속적으로 비교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가부장제적 가족문화와 여성에 대한 인식에 대한 개혁적인 변화를 하기 위해서 조선시대뿐 만 아니라 고려와, 삼국시대의 사회와 가족에 대한 이해가 더불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도 남성 중심의 사회일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남성과 여성의 삶의 모습이 조선시대와는 달랐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이런 측면에서 지금의 현대사회에 새롭게 등장하는 남성상과 여성상을 잘 인식하기 위해서는 조선 이전 사회의 가족과 여성에 대한 고찰이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