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현대 가톨릭의 위기 진단
(랄프 맥키너니 지음)
박정아 율리아수녀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종교라는 믿음을 전제로 하고 있는 구조 안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내가 진리라고 믿고 있고, 참으로 옳다고 여기면서 믿고 있는 대상(종교)이 지금 과연 믿을 만 한가’, ‘과연 건전하고 올바른 길을 걸어가도록 인도하고 있는가’를 묻는 것은 어느 면으로는 매우 성숙한 자세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의미에서 랄프 맥키너니의 <현대 가톨릭의 위기 진단>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과 교회와 교도권에 대해 갖고 있는 나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새로운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활짝 열렸고, 그리로 근대성이라는 신선한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이날은 참으로 주님께서 마련하신 날이었다.’ 라고 시작한 이 책은 새로운 변화와 신앙의 일대도약을 기대했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끝난 후 오히려 교회의 위기가 온 것에 대해, 그 원인을 ‘권위의 위기’로 보면서 문제를 제기했다.
전체 7장으로 구성된 책의 여는 말에서 저자 맥키너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리기 전 후의 교회 상황에 대해 말하면서 특히 1950년대 풍요롭고 활기찼던 미국 교회가 공의회 이후 얼마나 쇠퇴되고 신자들의 신앙이 흔들렸는지를 말한다. 세상의 복음화, 교회의 현대화를 외쳤던 공의회와 함께 무엇이 문제이었는지 자문하면서, 그 문제의 핵심을 ‘교회 권위의 위기’라고 보고 그 뿌리를 밝혀내고자 했다.
1장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의 가르치는 역할(교도권)을 재확인하기 위해 소집되었으며 가톨릭신자들은 공의회와 교황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교도권과 공의회의 가르침에 대한 (신학자들의) 공개적이고 계속적인 거부가 교회의 위기를 불러왔고 지속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2장부터 4장까지는 공의회 이후 1968년에 발표된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인간생명>이 가톨릭교회 안 밖에 어떠한 파장을 가져왔는지를 설명한다. 맥키너니는 ‘하나의 폭격처럼’ 발표된 이 회칙을 둘러싼 신학자들과 평신도들의 혼란과 거센 반발이 교회의 가르치는 권위, 교도권과 교황권에 대한 반발로 이어졌으며, 이런 교도권에 대한 반발은 결국 교회가 사양길로 접어들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5장부터 7장까지에서 맥키너니는, 1968년 <인간생명> 발표 후 20년간 교도권 문서들에 대한 신학자들의 불찬성은 제도화되었고, 이에 대해 바티칸은 이의제기신학자들에 대해 신앙고백, 충성서약, 교회법을 통해 강경하게 대응하였으며, 이로써 교회를 괴롭히는 위기를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도와 속죄가 불찬성의 악마를 몰아내고 교회를 다시 한번 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위대한 의망과 낙관주의로 가득 채울 것이다’라고 마무리하고 있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 다음 태어난 세대로써 공의회에 대해 배운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야말로 교회가 세상을 향해 열린 자세로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스스로 쇄신되고 새로워지기 위해 하나 되었던 때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쇄신된 교회안의 한 구성원으로서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교회 상황에 대한 적나라한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맥키너니가 말하고자 하는 것처럼 현대의 가톨릭의 위기가 내 것이 아닌 양 방관하고 넘어갈 수 없는 우리시대 가톨릭신자 모두의 과제이며, 함께 성찰하고 기도하면서 위기를 벗어날 길을 찾아야 함을 강하게 의식할 수 있는 기회 또한 되었다.
보통 병이 났음에도 알지 못하거나 별것 아니라고 방치했을 경우 더 큰 병으로 악화되고 결국에는 손도 못쓰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만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맥키너니의 <현대 가톨릭의 위기 진단>은 그런 의미에서 교회 안에서 우리가 내딛는 걸음들에 대해 반성과 성찰의 목소리가 계속 울려야 하며, 대면하기 힘든 현실이라도 똑바로 직시하고 헤쳐 나가도록 하는 쇄신의 정신을 갖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 가톨릭의 문제를 ‘권위의 위기’라는 한 측면으로 강조하고, 그 원인을 신학자들에게 두려는 저자의 관점은 교회 위기를 교도권의 입장에서만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신학자들이 교도권의 가르침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토론할 수 있지만, 맥키너니가 말하듯이‘교회전체를 연결’시켜야 하는 그들이 오히려 교회를 분열시키는 선두에 서있었다는 사실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신학자뿐만 아니라 전체 교회 안에 ‘공의회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적용이 결핍되고’ 있었고, ‘모호해진 교회의 참 본성’을 ‘신자들에게 분명히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는 사실, 즉 위기의 다른 원인들을 간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특히 ‘하느님 백성’인 교회 안에 발생한 문제를 진단하고 극복할 방법을 제시하고자 할 때는 좀더 포용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네 탓이오’라는 입장보다는 ‘내 탓이오’ 라는 복음적인 자세로 교회전체의 문제로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맥키너니가 전개하는 것처럼, 신학자들이 거세게 교도권의 가르침에 대해 반발할 때 인내로운 침묵을 지키다가 마지막에 법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자세를 보인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는 오히려 과연 ‘성령의 인도를 받는’ 어머니로서의 교회인가라는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저자는 이 위기를 극복할 길로 기도와 속죄라는 파티마의 호소를 우리 모두의 것으로 해야 한다고 결론짓고 있다. 하지만 무엇에 대한 속죄와 성찰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때 특별히 이의를 제기하는 신학자들과 대부분 무지한 상태로 방치된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기도와 속죄라는 결론 역시 가장 근본적인 위기에 대한 해결방안이지만, 너무 원론적으로 서둘러 마무리하고 있다는 인상이 든다.
한편으로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인간생명>에 대한 나의 입장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나에게 교회의 권위, 교도권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맥키너니가 말하는 것처럼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서 가톨릭신자에게 허용되어 있는 유일한 응답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뿐이다’라는 말에 공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교회가 제시하는 길이 나에게 부당하게 여겨진다고 해도 기꺼이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는가?’ ‘과연 이 세상 안에서 살면서 교회가 가르치는 바를 온전히 실천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 앞에서 나의 대답은 과연 무엇인지를 잠시 숙고하게 되었다.
결국 내가 믿고 고백하는 것은 교회의 가르침이 결코 나를 부당한 결과로 몰고 가게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나는 ‘교회의 충실한 구성원으로’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으로 교도권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그 세상 안에 있는 사람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교회는 신자들이 실제 삶 안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고 있는가? 교회가 알고 있다면 교회 전 구성원이 함께 기도하고 검토하면서 명확하고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과 함께 걸어가는 교회의 사명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생명>에서 말하고 있듯 ‘겸손되이 또 강하게 가르쳐야 할 맡은 바 의무를 소홀히 할 수 없는’ 교회의 사명을 생각하면서 나 역시 그 교회의 한사람으로서 이 세상에서 같은 사명을 받았음을 다시금 자각하게 된다.
또한 전통과 권위가 힘없이 무너지고, 다원주의와 합리주의, 인간중심주의, 물질만능주의가 어느 때보다 팽배해진 이 시대 가장 필요한 것은 ‘기도와 회개’의 자세이며, 이 험난한 시대 안에 주님께서 끊임없이 쇄신의 바람을 불러일으켜 주시도록 의탁의 자세로 기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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