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uality/영성,묵상

봉헌생활

Sr.Julia 2008. 12. 10. 12:22

                                                     2003년 2수련기

<‘봉헌생활’을 정리하면서>

 


 봉헌생활을 읽고 정리하면서 처음에 드는 생각은 내면적으로 ‘봉헌된 사람으로서의 ’을 입은 느낌이었다. 아직은 그 옷이 크고, 무거운 듯이 부담이 되는 듯한 느낌도 들지만...

 아직 서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이미 입회하면서 그리고 입수련을 하면서 내 겉모습은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는 어느 정도 구분이 되었다. 하지만 어쩌면 마음 한곳에서는 아직도 세상과 수도원이라는 두 세계 안에 발을 담그고 있었는지 모른다.

물론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금새 수도자로서의 신분의식을 다 했다고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동안 수도회의 카리스마와 복음 3덕을 배우면서 수도자가 누구인지, 봉헌생활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운 것들을 서원 사도직을 하는 이 기간에 이 책을 정리하면서 내 안에 수도자로서의 신분의식에 대해서 더 깊일 수 있는 시간이었고 또 봉헌생활이 무엇인지 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강력한 권고로 와 닿았다.

봉헌생활을 정리하면서 짧게 짧게 묵상되었던 것들을 정리해 보았다.


*수도자로서의 신분의식 : 표지, 예표, 증거, 드러냄 …> 상징

구약의 예언자의 모습, 존재 자체(특히 예레미야 예언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 현존의 상징이 되었듯이 봉헌된 사람들 역시 이 시대 안에서 그 존재 자체로 하느님의 사랑, 하느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상징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봉헌생활>에서도  ‘표지, 예표, 증거...’가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 중에 하나인 것 같다. 서원에 있으면서 많은 수도자들을 만나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수도자요. 그러니 이렇게 대우해주시오’ 라고 얼굴에 씌여 있는 듯이 느껴지는 수도자도 있고, 수련자인 나에게도 같은 봉헌된 사람으로서의 존중으로 정중한 태도로 다가오는 분도 있다. 한편으로는 사복차림으로 그가 수도자인지 보통의 신자이지 모를 정도로, 어느 때는 평신도보다 못한 모습으로 여러 가지 장신구(수도회 매달이 아닌 다른 목걸이, 반지...)와 핸드폰과 카드를 지닌 수도자도 보게 된다.

같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한 사람들이 왜이리 다른 모습일까? 사는 방식은 달라도 살고자 하는 그 본질은 같은 것일텐데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나 또한 이곳 서원에 있으면서 오시는 분들에게 수도자라는 하나의 표지로 다가갈텐데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에 대해서 성찰하게 된다. 이곳에 서있는 나의 모습이 나를 통해서 세상에 드러나고자 하시는 하느님을 보여줄 수 있는 표지로서의 모습인가? 나는 하루에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 사람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이런 마음가짐으로 다가가는지에 대해서 성찰하게 된다. 옷깃을 스치는 순간이라도 나는 그들에게 어느 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수녀로서의 모습으로 다가갈 때가 더 많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내 모습자체가 사람들의 영혼과 연결되어 있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나의 모습과 내면의 자세에 대한 책임감 또한 갖게 된다.


*오후에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를 뚫고 명동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는데 사람들의 걸음에 비해 우리 걸음은 거의 날아가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가족과 함께 길을 가던 중(아버지 생신 날)이었는데 그때도 그런 상황이었다. 많은 사람들 때문에 앞으로 갈 수 없는 나는 무심코 ‘왜 이렇게 사람들은 천천히 걷는 거야?’ 하고 말했는데 동생이 하는 말이 꽤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었다. ‘이 사람들은 마땅히 갈 데가 없는 거야. 목적 없이 그냥 방황하니까 볼 것도 많고 그러니까 당연히 느리게 가지...’

그 날 이 말을 계속 떠올리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적 없이 이렇게 살고 있을까.. 과연 내가 누구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이 사람들 안에서 살아가는 나는 어떤 모습일까...’

가야할 방향을 보여줘야 하는 사람들.. 그것이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가야할 곳을 몰라 방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명동을 가득 채운 인파보다 더 많을 세상의 방황하는 영혼들을 떠올려 보게 된다.

정북향을 향해 가는 이 여정이 단순히 나 혼자만 가야 할 길이 아니라 함께 가야할 목적지임을 느끼게 된다.


*세상에 주신 하느님의 선물

서원에서 손님들에게 물건을 주고 거스름돈을 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한다. 처음에는 이 인사를 의식하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이 말이 내 귀에 들어왔다. 보통적으로 생각할 때 밖에서는 손님이 물건을 사면 파는 사람이 손님에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는데 우리 서원에서는 그 인사를 하는 사람이 바뀌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왜일까? 라는 물음이 내 안에 던져졌다. 그러다가 들은 생각은 그 인사는 사고자 하는 물건을 우리를 통해 받을 수 있었다는 서비스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일수도 있었겠지만 그것보다도 우리 존재에 대한 고마움,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서원에 오시는 분들 중 꼭 몇 분은 이런 말을 한다. ‘명동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이렇게 계속 있어주셔서 고마워요.. 이곳은 도시 속의 오아시스네요..’ 이곳이 수도원이 아니었다면 이런 모습으로 몇 십 년을 이곳에 있을 수 있었을까 나 자신도 의문이 생긴다. 이 거리에서 아마 우리 서원이 가장 오래되었을지 모르지만 다른 곳보다 사람들의 인지도는 적은 곳! 그래도 이 세상 안에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이곳이 이 도시사람들에게 선물이듯이 나 또한 이 사람들에게 그리고 서로 서로에게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생각에 나를 부르셔서 당신의 선물로서 이곳에 있게 하심에 감사 드리게 된다.


*사랑하면 닮는다!

간혹 부부들이 서원에 오시면 참 많이 닮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 모습을 보면 함께 살면서 힘든 것도 많았겠지만 그만큼 서로 바라보고 사랑하면서 살았겠구나 하는 내 나름대로의 생각을 하게 된다.

또 그런 모습을 보게 될 때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 나는 내가 사랑하고 또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얼마나 닮고 있는가! 주님의 얼굴을 뵈온 적이 없으니까 그 외모를 닮을 수는 없지만 나는 주님의 어떤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 것일까! 생각하게 된다.

어느 누구도 하느님을 직접 뵈온 사람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모습이 하느님의 모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겠지만 하느님의 사람임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 하느님의 향기를 풍기는 사람들은 만날 수 있다. 선함, 맑음, 온유함, 너그러움...

하느님의 선하심을 닮고, 순수함을 닮고, 온유하심을 닮고, 자비로우심을 닮은 사람이 바로 봉헌된 사람들의 첫째 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사랑을 다 접어두고 자신의 온 존재를 충만히 채워주실 주님을 따르고, 닮겠다고 평생을 봉헌한 사람들이 바로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물론 서로 닮는다는 것이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다 되는 것도 아니고, 그 시간 안에서 자신을 비우고 상대로 채우기 위해 아픔도 있고, 실패도 있고, 때론 잠시지만 일치하는 기쁨도 있겠지만 진정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 모든 인간적인 감정과 아픔을 뛰어넘는 가치들을 선택하고 살아갈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모두가 주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아갈 소명이 있겠지만 봉헌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온 생애를 걸쳐 이루어야 할 사명이 아닐까!

 서원에 다녀간 한 부부를 보면서, 나도 나에게 심어주신 하느님의 모습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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