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이 예수께 다가와 말했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이미 늦었습니다. 그들(군중)을 돌려보내시어 스스로 음식을 사게 하십시오"
오늘 복음의 한도막이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맞는 말이다.
보통 이런 비슷한 일들을 만나게 되면 먼저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에 맞춰 행동하게 된다.
하지만 주님은 전혀 이성적이지 않은 말씀으로 대답하신다.
"그들을 돌려 보낼 필요가 없다. 그들에게 너희들이 가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가진 것이 얼마인지 뻔히 아시고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제자들은 얼마나 황당하게 여겼을까..
그리고 우리 삶에서 이런일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정신나간 말이냐고 한참을 얘기듣겠지..
그리고
오늘 독서에서는 같은 예언자인 하나니아와 예레미야가 서로 다른 예언으로 대결을 한다.
같은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의 말씀을 전한다는 동료이지만 어느 상황안에서 서로 상반된 말을 하고 있다.
함께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인데 서로 반대에 서서 그들의 말을 듣는 이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그리고 또 다른 1독서.. 민수기에서는 먹을 것이 없다고 반항하는 백성들을 보며 모세가 하느님께 불평한다.
이들은 당신 백성인데 왜 내가 이들때문에 이렇게 고생해야 하느냐고...
이 세가지 독서를 함께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할 때 그 앞을 가로막는 세가지 장애를 보게 된다.
모세처럼 그 당사자일 수 있고
하나니아처럼 경쟁자나 적대자일 수 있고
제자들처럼 함께 하는 동료나 공동체일 수 있다.(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주장하는)
사실 삶을 되돌아보면, 아니 지금 이순간을 바라보더라도 이런 장애는 곳곳에 있다.
하지만
신앙 특히 그리스도교의 아름다움, 신비는 어느 장애에도 불구하고 모든 상황안에서 내가 믿는 주님은 해답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다.
내 성격을 보더라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효과적인 것을 선호하고 그렇게 살려고 발버둥쳤다.
하지만 이즈음의 시간을 보내면서
예전의 나라면 '바보'같다고 여겨질만큼
'놓고 살려'고 한다.
모든 것에 토를 달지 않고, 유리창을 걷어내고 바람앞에 서서 그것을 충분히 내 몸으로 느끼도록 말이다.
물론 쉽지 않다.
내 스스로가 모세처럼 안되겠습니다라고 불평할 때도 분명 많고,
왜 저사람은 이렇게 하지 않습니까 라고 불만을 터뜨릴 때도 있고,
하나하나 지시하려는 이들 또한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간의 주인은 분명 주님이시고, 이 시간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 사건의 답을 아시는 분은 주님이심이 분명하니
오늘도 그것에 맡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