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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체와 복음화

Sr.Julia 2007. 6. 7. 10:20
 

1. 소공동체가 어떻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말한 교회관의 실현인가?

나눔과 일치, 친교의 공동체였던 첫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로마제국에 의해 국교화 되면서 점차 제도교회로서 법적이고, 외면적인 형태가 강조되었고, 이 제도로서의 교회이해가 19세기에 이르러 사회의 변화와 학문 등의 영향으로 교회전반에 쇄신의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마침내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림으로써 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성찰과 함께 ‘교회는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갖게 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헌장에 드러난 핵심적인 개념은 하느님 백성과 친교이다.

‘하느님백성’이란 성직자-평신도의 이분화된 교회가 아니라 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에 바탕을 두고 모인 모든 백성으로 인격적이고 공동체적인 성격을 갖는다. 또 하느님 백성은 모두 보편사제직의 직무를 받으면서 세상구원을 위한 자격과 책임을 갖게 된다. 그리고 ‘친교’는 하느님의 삼위일체적 관계를 드러낸다. 하느님 백성인 교회는 친교를 바탕으로 동질성을 가지면서 또한 교회안의 다양성을 지향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말하고 있는 하느님백성과 친교의 교회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 교회는 신자들의 모든 합법적 집회에 존재하며, 이 회중은 보편교회와 연결되어 있으면서 성령을 통해 신앙의 확신으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자기 지역에서 보편교회를 현존시키고 일치와 다양성을 갖는다. 또 교회건설을 위해 성직자 중심이 아니라 불리움 받은 모든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3중 직무(보편 사제직)에 참여하면서 교회의 성장과 성화에 능동적으로 사명을 수행하는 주체가 되었다.

소공동체는 개인적이고 형식적, 수직적인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말하고 있는 섬김과 나눔을 통해 공동체적이고, 삶의 자리 안에서 하느님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친교의 교회를 지향한다.




2. 한국의 구역 반이 소공동체인 이유를 밝히고 이를 심화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소공동체 네 가지 요소는 삶의 자리, 복음, 실천, 보편교회와의 일치이다. 이 네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결핍이 되면 소공동체라고 하기 어렵다. 삶의 자리가 빠지면, 교회, 본당 단체와 같고, 복음이 빠지면 친목모임처럼 비신자들의 모임과 비슷하며, 실천이 빠지면 지적인 모임이나 기도모임과 같고, 보편교회와의 일치가 빠지면 갈라진 교회와 같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요소를 모두 갖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구역 반이 소공동체라는 것을 4가지 요소를 통하여 밝혀 보고자 한다.

첫째, 소공동체는 삶의 자리를 중심으로 한다. 우리 삶의 가장 기본 단위는 가정이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볼 수 있는 소공동체는 인근 이웃 교우들이 모이는 구역, 반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선교사명]51항에 ‘기초공동체는 소수의 가정이나 인근 신자들이 기도와 성경독서와 교회공부와 인간적 교회적 문제에 대한 토론을 하고 공동책임을 도출하는 소수신자들의 집회’이며, ‘이 공동체들은 본당 공동체를 분권적으로 구성하고 있으면서 항상 본당에 속하며, 생활주변과 촌락에 뿌리내려서 그리스도교 생활의 누룩이 되고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을 돌보고 사회개량의 의무를 다한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몇몇의 이웃 가정을 단위로 인근 신자들이 모이는 한국의 구역, 반은 연령이나 직분,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라는 틀을 벗어나 하느님 안에서 친교의 공동체로서 모인다. 또 한편으로 여성의 사회참여와 다양한 직업, 사회적 환경 등으로 소공동체 모임에 합류하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둘째, 소공동체는 복음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복음을 나눈다. 이것은 신자들이 복음을 중심으로 하느님과 이웃과 친교와 일치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으며 복음을 나눔으로써 신자들끼리 서로 가까워지고, 깊은 친교를 나누면서 신앙생활이 쇄신되고 자신의 복음화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복음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현재 구역, 반모임에서 [복음 나누기 7단계]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있다. 그러나 소공동체모임=복음나누기7단계라는 획일적인 틀을 가질 수 있다. 소공동체를 위한 [길잡이]에 영적 성장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소개되고 있는데, 다양한 복음 나누기 프로그램들이 효과적으로 실시되기 위해서 구역, 반장 모임에서  교육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셋째, 소공동체는 활동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고 실천한다. 복음으로 힘을 얻은 소공동체는 세상 안으로 투신하고 실천해야 한다. 또한 교회 안에서만의 친교가 아니라 비복음화된 세상에 영향을 주면서 세상을 복음적 가치로 변화시키려는 실천을 해야 한다. 따라서 구역, 반을 중심으로 복음을 실천하기 위해 가난하고 소외되고, 어려운 이웃을 찾고 돌보며, 교회의 안팎으로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하면서 지역 사회를 함께 돌보며 세상을 하느님 나라로 가꾸어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공동체, 우리 교회 뿐만 아니라 세상을 돌보는 실천은 바로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게 되고 교회를 알리고 선교하게 하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실천이 함께 하는 복음 나누기 7단계를 하면서 소공동체 모임에서 해야 할 활동이 무엇인지 알고 실천할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체로 모여서 말씀을 나누고 기도하는 것은 복음의 정신을 공동체가 함께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며, 또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도록 실제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자발적으로 찾아서 함께 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넷째, 소공동체는 보편교회와의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소공동체는 우리 몸의 세포와 같다. 소공동체간의 친교와 일치, 그리고 사제, 교구장 즉 보편교회와 일치를 이룬다. 구역, 반은 각 본당에 소속되어 있고 또 본당의 사목자, 교구장과 일치되어 있다. 구역과 반이 소공동체로서 더 활성화되고 교회 안에서 더 일치하고 친교를 이루기 위해 보편교회의 정신을 잘 따르는 것도 중요하며, 본당 사목자들이 소공동체 즉 구역 반의 활성화와 본당과의 깊은 일치를 위해 정기적으로 자주 방문하고 각 소공동체에 대해 격려하고 본당 안에서 각각의 소공동체들이 일치하도록 이끌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이처럼 한국의 구역, 반은 보편교회와 일치를 이루면서, 각각의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중심으로 모이고 복음을 나누며, 복음으로부터 힘을 얻어 공동체와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실천하는 소공동체이다.



3. 소공동체 모임에서 복음 나누기가 왜 중요한가?

 하느님과 인간이 일치하고, 이웃과 사랑과 친교의 일치를 하기 위해서는 복음,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복음은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이며, 말씀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말씀을 듣고 예수와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소공동체는 복음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복음 나누기를 한다. 이것은 신자들이 누구나 주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기도하는 자세로 들어야 할 뿐 아니라 복음을 나누면서 신자들끼리 서로 가까워질 수 있고 깊은 친교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말씀을 중심으로 모일 때 살아있는 그리스도와 만나는 것이며 신앙생활이 쇄신되고, 자신의 복음화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복음화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음 나누기는 소공동체가 주님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사랑할 수 있고, 주님과 함께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체험의 장이 될 수 있도록 삶과 복음을 결합시켜 줄 것이다.

복음 나누기는 복음의 힘으로 소공동체가 일상의 삶의 문제를 공동체가 스스로 해결하게 해준다.

복음 나누기는 소공동체의 영성적 기반을 튼튼하게 해줄 수 있다. 성령이 내 삶속에 더 깊이 있게 들어오실 수 있도록 하는 도구이다.

복음 나누기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체험하게 해준다.


 

4. 소공동체에 대하여 비판적 견해가 나온 배경과 여기에 대한 나의 입장은?

-소공동체는 우리와 다른 문화적 상황인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온 수입품이다.

소공동체 운동을 교구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하던 초기에 본당사목을 하는 성직자들로부터의 반발과 회의적인 태도,  무관심의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왜 룸코의 소공동체 모델을 수입해야 하는가, 왜 우리식으로 토착화된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는가, 한국문화와 이질적인 방법으로 과연 성공하겠는가 하는 회의가 일어났다. 지금의 교회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우리 것을 개발하지 않고 레지오 마리애나 ME처럼 또 다른 수입품을 들여왔다고 생각하는 사목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소공동체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그것이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의 산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미 소공동체로서의 교회에 대한 가르침이 나왔고, 또 그 정신에 따라 만들어지고 실천된 것이 소공동체 운동이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서 이러한 소공동체 운동이 개발되고, 또 활성화되면 좋겠지만 교회가 현실을 진단하고 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데 있어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이미 마련되어있고, 실천되고 있다면 그것이 아프리카거나 아시아거나 또 라틴 아메리카라고 할지라도 우리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개방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소공동체운동이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선진 강대국, 유럽에서 나온 운동이라도 수입품이라는 비판을 했을까 라는 씁쓸한 생각이 들면서 다른 나라의 경험들을 통해 보다 나은 교회의 정신을 구현할 수 있고, 발전시킬 수 있다면 편협하고 폐쇄적인 토착화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보편적이고 개방적인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소공동체 모임은 구역 반이라는 행정 조직에 불과하다.

소공동체 모임이 구역, 반이라는 행정조직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이런 말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이런 비판은 소공동체 모임에 대한 인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나왔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반, 구역 모임은 본당의 하부조직으로 본당의 주요사안들이나 지시상항들을 신자들에게 전달하고 실행하도록 하며 또 신자들의 의견을 본당에 전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또 대체적으로 구역장이나 반장을 중심으로 모임을 운영하기 때문에 일반 구역원이나 반원들은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소공동체 모임은 신자들의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모이며, 무엇보다도 ‘말씀’을 중심으로 모여 기도하는 공동체이고, 신앙과 실천이 하나되는 생활공동체를 지향한다. 따라서 소공동체 모임은 단순한 친교 모임이 아니다.

따라서 소공동체 모임은 기존의 반, 구역 모임을 말씀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복음 나누기 7단계는 우리나라 소공동체에는 맞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사실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말씀을 중심으로 모이게 되는데, 말씀을 나누는 것이 소공동체와 맞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신앙공동체이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 말의 바탕에는 복음 나누기가 맞지 않는다는 것이기 보다는 복음나누기가 어렵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톨릭은 트렌트 공의회이후 말씀보다는 성사에 더 강조점을 두면서 신자들을 교육하고 사목해왔다. 그러다가 이제 말씀에 대한 갈망, 묵상, 나눔 들을 시작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말씀을 묵상하고 나눈다는 것이 아직 쉽지 않고 생소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은 말씀에서 나온 것이며,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 성사생활이 더 의미 있게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소공동체 구성원들이 말씀을 중심으로 모일 때 자신들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며,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 신앙생활이 쇄신되고 복음을 나눔으로써 신자들끼리의 연대와 친교가 더 돈독 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공동체가 함께 복음을 읽고 나눔으로써 각 개인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시선이 주님의 시선으로 변화되고 세상을 향해 개방되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소공동체 모임은 자칫 개신교식 교회 모습이 될 우려가 있다.

소공동체에 대해서 거부감을 갖는 것 중에 하나가 소공동체모임이 개신교식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개신교의 구역모임은 가톨릭의 반, 구역모임보다 더 조직적이고 활성화되어 있어서 신자들을 관리하는 주요 수단이다. 이렇게 개신교에서 구역모임이 활성화된 것은 가톨릭처럼 관할 구역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목회자를 중심으로 모이는 광범위한 지역적 특성 때문이다. 신자들이 관할 구역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기 때문에 신자들 스스로 구역모임을 조직하고 신자들을 관리하는 구역모임이 활성화된 것이다. 또 가톨릭처럼 입교를 위한 정규 교육이 없기 때문에 구역모임에 매주 모여서 성경을 공부하고 예배를 드리는 구역모임이 신자들의 교육에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소공동체 모임이 개신교의 구역모임처럼 성경을 공부하고 함께 예배드리는 형식으로 보여지면서 거부감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공동체 모임이 개신교의 구역 모임과 다른 것은 무엇보다도 보편교회와의 일치 안에서 친교와 나눔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소공동체 모임은 어느 한 목회자, 성직자 개인과 연결된 것이 아니라 보편 교회 안에서 일치하며, 같은 교회의 정신을 지향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공동체 모임이 개신교식의 교회모습이 아닌가라는 비판은 우리가 전체 교회 안에서 서로 친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간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공동체 때문에 우리 교회를 이끌어온 레지오가 점차 쇠퇴해가고 있다.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는 한국 천주교회에서 비중이 큰 교회조직이다. 그런데 이 두 조직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레지오 마리애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고 꽤 오랜 동안 교회 안에서 독보적인 단체로 모든 교회활동이 레지오 마리애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소공동체 모임이 교회 안에서 새로운 교회상을 제시하면서 소공동체중심으로 본당을 활성화하려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조직이나 구성원, 모임 시간 등의 실제적인 현실에서 서로 충돌하게 되거나 간섭하고 경쟁하는 관계가 되는 일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 두 조직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라기보다는 보완하는 관계로 발전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는 그 조직의 구조나 활동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소공동체가 본당 공동체에서 모든 신자를 포괄하고 존재(being)에 비중을 둔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조직체라면, 레지오 마리애는 그 단체에 가입하고 또 가입하고자 하는 특정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교회의 사명수행(doing)에 비중을 둔 특수한 사명을 담당하는 조직체이다. 

따라서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는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는 관계라기보다는 소공동체라는 기본적인 조직위에 레지오 마리애라는 사도적인 조직이 세워질 수 있는 상호보완적인 관계라고 생각한다. 이 두 조직은 교회의 사명을 더 풍부하고 다양하게 하면서 일치 안에서 서로의 조직에 대한 특수성을 이해하고 편견이나 ‘우리만’이라는 이기적인 관점을 벗어나 서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소공동체는 우리와 다른 문화적 상황인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에서 온 수입품이다. 한국의 소공동체 모임은 구역 반이라는 행정 조직에 불과하다. 복음 나누기 7단계는 우리나라 소공동체에는 맞지 않는 것이다. 소공동체 모임은 자칫 개신교식 교회 모습이 될 우려가 있다. 소공동체 때문에 우리 교회를 이끌어온 레지오가 점차 쇠퇴해가고 있다.> 라는 소공동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나 편견, 오해 등에 대해서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반대로 소공동체에 대한 필요성, 이 시대 안에서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이 소공동체라는 말을 많이 들어온 터라 이런 비판들이 어떤 배경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럼에도 이런 비판적인 견해들을 대하면서, 누군가 나에게 이런 견해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보게 된다.

그렇다면 누가 이러한 비판을 하는 입장일까를 생각할 때 지금과 같은 교회의 모습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현재의 교회의 모습에 만족하고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들 모두가 그러한 것은 아니겠지만 양적인 팽창위주로 내적인 성장 없이 덩치만 커져버린 교회의 대형화, 가난하고 소외받은 이들의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교회의 중산층화, 탈권위주의 시대에 아직도 성직자 중심적인 권위적인 교회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또 이 시대 안에서 교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고, 또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 이에게 소공동체모임을 활성화하려는 움직임들에 대해서 좋은 시선을 주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의 진정한 모습을 되찾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라면 교회안밖에서 이루어지는 상황들이 어떻게 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우선 알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나의 위치, 지위, 문화 사회적 배경, 이해관계 들을 떠나 무엇이 교회를 위해 필요한 것인지, 중요한 것인지, 무엇을 우리가 행동에 옮겨야 하는 것인지를 고민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모든 것에 있어서 수용하고, 받아들이고 시행할 수는 없다. 각 교회들의 상황은 지역과 시대와 문화, 사회적인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좋았다고 해서 우리에게도 반드시 좋으리라는 안일한 자세 역시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현재 우리 교회의 현실이 무엇인지 올바로 직시하고, 방향을 찾아 나아가려고 하는 교회에 대한 사랑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본질은 공동체이다. 공동체란 그 구성원이 서로 인격적인 사귐과 나눔을 실행하며 생활 전반에 걸쳐 긴밀한 유대 관계 속에 사는 것을 말한다. 소공동체는 바로 이러한 교회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교회적 실체로서, 성령의 이끄심으로 현대 가톨릭교회에 주어진 선물이며, 부활한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깨달음과 체험으로 이루어지고 퍼져 가는 새로운 교회형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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