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내 안에 사신다"(갈라 2,20)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신다 하는 말씀을 깊이 이해한다면,
우리 안에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온전히 결합될 것이고,
그리스도와 결합되면 이웃과도 쉽게 결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신다고 하면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이신 성부와도 깊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성부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와 결합돼 있는 우리는 이웃과도 결합되어 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웃을 찾아가서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러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 내 안에 사신다라는 원칙이야말로 사도직 수행에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께서 오늘 오셨다면 무엇을 하셨겠는가?
그분은 꼭 출판사업을 했을 것이고, 라디오를 만들었을 것이고,
또 음반을 만들어서 어떻게든지 대중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달하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G.알베리오네)
그분은 이 목적 때문에 수많은 편지를 쓰셨고, 산꼭대기에서 산골짜기까지 어디든지 뛰어다니셨습니다.
그런 분이므로 오늘 오셨다면 이런 모든 일을 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은 당연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위대한 활동가일 뿐만 아니라, 그분은 또한 아주 위대한 관상가였습니다.
우리가 사도 바오로를 우리의 수호자로 모시게 된 동기는 사도 바오로야말로 관상생활과 활동생활을
자기 안에서 오묘하게 종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 그리스도와 일치하면서 동시에 인간들과 접촉을 가지고 인간들을 복음화시킴으로써
자기 안에서 그리스도와 인간을 결합시키는 일을 하셨습니다.
설립자의 영성은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사도 바오로가 사도직을 이해한 것처럼 그분도 사도직을 이해하고,
그분이 교회에 헌신한 것과 같이 오늘의 교회에 헌신하고, 그와 똑같은 일치된 지향이 여러 갈래로 나누어져
한 목적을 달성하는 사도 바오로의 모습을 재현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 바오로와 인간과의 관계
사도 바오로께서 인간들과 맺으셨던 관계를 세가지 입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였다는 것,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을 포용하였습니다. (로마 15장)
그분은 당시로서는 마지막 땅이라고 생각했던 스페인까지 찾아가셨습니다.
그리스도 다음으로 바오로만큼 온 인류를 사랑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둘째는 모든 환경과 모든 사람에게 자기 자신을 적응시켰다는 것입니다. (1고린 9장)
어떤 민족이나 공동체를 만나든지 자기 자신을 그들과 적응시키려고 몹시 애를 썼습니다.
"내가 유다인들을 대할 때는 그들을 얻으려고 유다인처럼 되었고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에게는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나 자신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서도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 내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그들처럼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중에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한 것입니다."(1고린 9, 20-23)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진정 인간을 진심으로 사랑한 까닭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바오로께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사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셋째는 각 사람의 인격을 진정 사랑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로마 6장. 1데살 2장)
바오로는 모든 사람을 대하되 각 사람과의 깊은 관계를 유지하였다는 것입니다.
각 개인을 깊이 존중하고 사랑하였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데살로니카 전서 2장을 보면 사도 바오로께는 각 사람에게 아버지로 나타납니다.
복음을 전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바로 생명을 그들에게 준 아버지로서 각 사람을 자기의 자녀처럼 사랑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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