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7월의 마지막 날이다.
주말이고, 더운 여름의 한가운데이다.
어제 오늘 곳곳에서 <선물>이란 단어를 많이 접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 요즘 읽고 있는 책 중에서 좋은 예가 있어 적어본다.
'몸의 신학'에 대해 한국에 첫번째로 선보이는 책인 <사랑이 부르시다/ called to Love>에 나오는 얘기인데
많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을 것 같다.
선물을 인식하기
~ 독일의 시인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일화는 선물이 지닌 창조적 가능성을 잘 그리고 있다.
어느 날 릴케와 그의 친구가 교회를 지나 가는데 한 늙은 여인이 문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다.
릴케의 친구가 그녀에게 잔돈 몇푼을 던져 주어쓴데 행인들의 기계적인 동작에 익숙해진 그 거지 여인은
눈을 들어 올려다 보지도 않은채 그 돈을 받았다.
그날 늦게 그 두 친구가 다시 교회 앞을 지나가게 되었을때 릴케는 진정한 시인답게 장미 한송이를 사서
그것을 그녀에게 선물했다. 친구 눈에는 무슨 소용이랴 싶은 선물에 그 여자가 보인 반응은
그의 친구가 돈푼을 던져 주었을때 보인 반응과 완전히 달랐다.
그녀는 눈을 들어 미소를 짓고 그 후로 일주일 내내 교회 문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릴케의 친구가 릴케에게 그 여자가 일주일간 무엇으로 먹고 살았을까 궁금해 했을 때 릴케는 그 즉시 대답했다.
그 여자는 장미를 먹고 살았다고.
행인들이 그녀에게 기계적으로 적선하는 돈은 그녀의 영혼에 아무런 인간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지 않은 반면,
릴케의 장미는 그것을 받은 사람이 지닌 존엄성 그자체를 건드림으로써
그녀를 다시 살아나게 일깨운 특별하고 인격적인 선물이었다.
요 며칠 일산의 작은 서원에서 사도직을 하며
이런 저런 생각들을 많이 하게 되는데 어제 오늘은 선물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원에 오시는 분들 중에는 자신을 위한 책이나 음반을 구입하는 분들도 있지만
절반 이상은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 매체를 산다.
그리고 그 모습들을 보면 참으로 다양한 느낌의 선물들이 많다.
그리고 그 모습들 안에 나를 넣고 보면 내 자신 또한 그들에게 어떻게 내어주어야 하는지,
나는 그들에게 어떤 선물이 될 수 있는지 잠시 머물러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선물들이 많지만 영혼을 건드려주는 선물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난 그중에서 참된 선물을 알고 있으니 그것만으로 행복하다고 할수 있겠지..
...예수 그리스도...
내 존재를 움직이게 하시는 유일한 분으로 내게 참 선물이 되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