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uality/영성,묵상

하늘과 바람과 별과...(김진태 신부님)

Sr.Julia 2011. 11. 9. 17:32

10월에 받은 교리신학원 소식지를 아직까지 제대로 못보다가 이제야 펼쳐보았다.

정신없이 지난 10월이어서 책상한쪽에 있던 <한알의 밀씨>를 펼쳐보았다.

김진태신부님의 묵상글이 여전히 마음 한편에 잔잔히 남는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김진태 그레고리오 신부

 

저녁반 강의가 전부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여느날처럼 오늘도 교리 신학원 건물에 밤의 정적이 다시 찾아들었다.

묵주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간다.

밤하늘인데도 모처럼 하늘이 끝없이 푸르고 작은 구름들만 그럴듯한 그림을 그렸다 지웠다 한다.

서울 하늘에서 별을 잊은지 오래지만 그래도 오늘 같은 맑은 밤에는 애써 찾아보면 몇개씩은 찾아진다.

하루 종일 사람으로 채워졌던 마음이 이렇게 하늘로 가득하다.

순수하고 곧은 마음을 휘저어 놓을 것 같은 바람이 부는데, 바람은 오히려 땀으로 끈끈해진 살갗과,

밤잠을 그리는 사지(四肢)를 시원하게 해준다. 그냥 좋다.

그냥 이렇게 바람을 맞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그냥 좋다.

그냥 이렇게 불빛과 찻소리에 방해를 받으면서도 별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그냥 좋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시(詩)가 없다.

 

시가 없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더운 일상에서 도망 나온 홀가분함만 가득할뿐, 두근대는 가슴이 없다.

하늘이 보이고 별이 보이고 바람이 마음을 휘저어 놓으면, 그 자리는 으레 시가 있다고 하는데, 왠지 시가 없다.

마음이 없다. '나'가 없다. 홀가분함을 즐기는 '나'는 있으나,

뛰는 가슴으로 감동하는 '나'가 없다. 시를 쓰고 노래하는 '나'가 없다.

분주함이나 귀찮음이나 작은 걱정들 없이 그저 홀가분하기만 하면 '아, 행복해' 하고 말하지만

이 말은 '아, 편안해'하는 말과 전혀 다를바가 없다.

행복과 편안이 같은 것이 되면서 시가 증발해 버렸다.

 

피퍼 교수의 <여가(餘暇)와 경신(敬神)> 마지막 원고 교정을 마친 참이었다.

참된 여가, 참된 쉼의 핵심은 축제를 벌이는 마음이고 축제는 경신(敬神)행위에서

최종 의미를 얻게 된다는 말이 머리속을 맴돈다.

그리고 진정한 여가는 그냥 넋놓고 빈둥거림이 아니라 하나의 행위라고 한다.

여가는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참된 마음의 평화는 단순히 무념무상(無念無想)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애타하는 사랑의 축제심이라고 들린다.

진정한 행복은 마음이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울렁이는 것이라고 들린다.

자비와 사랑 때문에 하느님의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동한데서(스플랑크나) 우리 구원이 시작되었다면

하느님을 닮은 우리도 사랑으로 마음이 움직일때 비로소 인간다운 행복에 이르게 된다고 들린다.

실은 불행하게 사는데도 행복하다고 느끼며 지내는 것은 아닌지("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루카 6,26)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때에도 왜 불행한지 모르면서 불행한 것은 아닌지... 생각이 엉키기 시작한다.

 

나이와 함께 경직되어가는 마음이란! 신선한 하늘이 가슴에 순수를 쏟아부어주는 데도

삶의 경험은 마음속에서 무경험의 순수를 비웃고만 있으니!

'하느님 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안식, '끝없이 하느님과 함께 노는 법'을 이 지상에서부터 연습할 수 있도록

진정한 삶의 휴식을 본능적으로 알게 해 주시고, 관상의 힘을 우리 본성안에 심어놓으셨는데,

그런 본능과 본성을 가리는 수많은 인위(人爲)를 왜 방치하고만 있는지!

하늘을 봐도, 별을 봐도, 바람이 온 몸을 간질여도 마음은 왜 마냥 길들여진 편안의 법칙만 고집하고 있는지!

 

순수를 일깨우려는지 하늘은 여전히 푸르기만 하다.

'하늘'에 '나라'가 붙으니 '하느님 나라'와 같은 뜻을 지니는 '하늘나라'가 된다.

그 나라는 하늘 어디쯤에 있을까 하늘 곳곳을 뒤적여 본다.

문득 얼마전 하늘나라에 가신 분을 생각한다. 그분이 누릴 영원한 안식, 영원한 축제, 영원한 여가를 생각한다.

하늘이니 별이 있을 것이고, 그분이 가신 곳이니 죽어가는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고,

그런 울렁이는 마음이 있으니 노래와 시가 있을 것이고, 사랑으로 울렁이는 노래와 시가 있으니

행복이 있을 것이고... 그 나라를 생각한다.

경신(敬神)과 애인(愛人)이 같이 붙어 가슴을 경(敬)과 애(愛)로 무한히 두근대게 하는 곳을 상상해 본다.

하늘에는 수시로 모양을 바꾸는 구름과 살랑거리며 살갗을 유혹하는 바람에도 불구하고,

환한 불빛 너머에서 힘들여 찾은 별들이 한결같이 순수를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