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선생님이라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던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화려한 이국적인 생활을 동경하며 답답한 지금 현실에서 탈출하기만을 바라고 있지요. 사람들 앞에서 환호를 받으며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자신이 있는 현실 공간은 너무 좁아 보입니다. 그래서 그는 언젠가는 바다 건너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가 그려진 홍보 팜플렛을 들고 다니며 수시로 꺼내 보면서 떠날 날을 고대하고 있지요. 그런데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미래를 어루만져주시는 분이니까요!”라는 한 소년의 꿈을 듣게 됩니다. 자신에겐 답답한 현실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된다는 것이 생소한 남자입니다. <교실 안의 야크>의 주인공 유겐 선생님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유겐은 부탄의 수도 팀푸에서 나고 자란 신세대 젊은이입니다.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와 살면서 선생님을 하고 있지만 단조로운 교육공무원의 생활은 답답하게 여겨지고 자신의 미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래를 썩 잘하는 그는 오스트레일리아로 가서 가수가 될 거라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떠날 수 없는 것이 정부와 5년간의 교사 계약을 맺었는데 아직 일 년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유겐이 지난 4년 동안 시간만 채우며 의욕 없이 가르쳐왔던 것을 알고 있는 교육부 장관은 그에게 루나나로 가서 남은 기간을 채우라고 합니다. 루나나는 부탄에서도 가장 외진 곳에 있는 오지로 고도가 4,800m로(의) 높은 산골에 있습니다. 전체 인구가 56명이니 얼마나 작은 마을인지 상상이 가시지요. 유겐은 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못 산다며 고산병이 있다고 핑계거리를 찾으며 가고 싶지 않은 속마음을 표현하지만 되려 “고산병이요? 당신 부탄 사람 맞아요?”라며 호통만 들을 뿐입니다. 그리고 꼼짝없이 겨울이 오기 전까지만 루나나의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약속을 하게 됩니다.
편리한 도시 속에서만 살았던 유겐에게 차편도 없어서 6일 동안 꼬박 히말라야 산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루나나는 가기도 전부터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산행을 예상하며 차려입은 등산복도, 방수기능이 있다고 장만한 고어텍스 등산화도 아무 소용없는 험한 산길을 계속 오르다 보니 눈 앞에 펼쳐진 히말라야의 멋진 풍경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초행길인 그를 안내하기 위해 루나나에서 마중 온 미첸과 싱게는 지쳐 투덜대는 유겐을 어르고 달래가며 루나나까지 동행합니다.
‘가볍게 산을 타고 6일간 걸어서’ 루나나 근처에서 다다르자 선생님이 오신다며 신이 난 온 마을 사람들이 2시간 되는 거리를 마중 나왔습니다. 촌장님과 주민들은 마치 왕을 모시듯이 그를 극진히 대접합니다. 처음 겪는 낯선 상황에 얼떨떨해진 유겐은 마을 사람들에게 떠밀려 학교로 들어가게 되는데, 곧바로 먼지가 자욱한 책상과 칠판조차 없이 폐허처럼 방치된 교실을 보고 기겁하지요.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충격적인 발언을 합니다. “여기서는 도저히 못 가르칠 것 같아요. 제가 자원해서 온 것도 아니고 돌아가고 싶어요.” 루나나에 오자마자 돌아가겠다는 철딱서니 없는 유겐을 보며 촌장님이나 마을 사람들은 당황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놀라웠던 것은 유겐의 풀죽은 모습을 본 촌장님이 한 말씀이었죠. 먼 길을 오셨으니 며칠만 쉬었다가 다시 돌아가는 길을 안내하겠다고 그를 안심시킵니다. 그가 어떤 마음이었던 간에 마을의 어린 학생들과 주민들은 그가 선생님으로 루나나와 와준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합니다. 다음 날 아침 늦잠을 자고 있던 유겐을 한 아이가 깨웁니다. 유겐이 있는 방문을 두드린 펨잠은 자신이 학급 반장이라고 소개하며 “수업이 8시 반인데 지금 9시라서요. 선생님이 안 오셔서 무슨 일인가 보러 왔어요.”라며 기대에 찬 반짝이는 눈으로 유겐을 바라보지요. 이렇게 해서 루나나 학교가 시작됩니다.
여러분들이 예상하실 듯한데, 이후의 이야기는 유겐이 팀푸로 당장 돌아가겠다는 마음을 바꾸고 남게 됩니다. 전기도 없고 심지어 교실 의자와 칠판도 제대로 없는 오지 학교에 남겠다고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영화를 보면 몇 가지가 이유를 발견하실 수 있는데 제가 찾은 두 가지를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다른 것들은 직접 영화를 보시면서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아이들과 첫 수업을 하면서 한 아이는 자신을 소개하며 선생님이 꿈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미래를 어루만지는 사람이니까요.”라고 대답하죠. 아이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들은 모두 선생님을 그러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마을 촌장님이 늘상 선생님을 우리 미래를 어루만져주시는 분이라고 말해왔었기 때문입니다. 유겐은 사범대학에서도 들어본 적 없었던 교사라는 직업이 가진 무게를 가장 외딴곳인 루나나에서 실감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에는 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고 들어왔는데, 지금은 잊혀진 정서여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장면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유겐은 스스로 학교를 정돈하고 손재주 많은 미첸에게 교실에 필요한 칠판과 분필을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종이와 연필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도시에 있는 친구들에게 부탁도 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유겐에게 야크의 노래를 가르쳐준 살돈이 야크 한 마리를 데리고 옵니다. 루나나 사람들에게 야크는 가족처럼 귀중한 존재인데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주기 때문입니다. 야크의 변까지도 불을 피울 때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죠. 유겐에게는 야크의 변이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살돈은 밖은 추우니 교실에서 야크를 키우라고 합니다. 소를 교실에 두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루나나의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실 안에 있는 선생님과 교실 안에 있는 야크가 같은 존재로 여겨졌으니까요. 미래를 어루만지며 모든 것을 주는 존재가 바로 교실 안의 야크, 유겐 선생님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영화 제목이 의미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어느 수녀님이 추천해주어서 본 것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부탄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그 특별함에도 끌렸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푸른 하늘과 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그 위에서 아이들이 웃고 있는 영화 포스터에도 반했지요. 지금같이 코로나 팬데믹이 길어지다 보니 무공해의 풍경과 순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막바지에는 유겐이 루나나에 계속 남아 학생들을 가르칠까 궁금했는데 영화는 꽤나 현실적이었습니다. 결말은 직접 확인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의 꿈은 어디에서 이뤄지는지...
내용은 단순했고 영화적인 연출이나 편집은 화려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 문명이 닿지 않는 부탄의 대자연과 루나나 사람들이 보여주는 순박한 아름다움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유겐에 비춰보며 나 자신은 어디에서 행복을 찾고 있는지, 또는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나를 내어주는 삶이란 무엇인지를 잠시 묵상해보신다면 영화가 주는 잔잔한 여운은 배가 되겠지요.
<사목정보> 2021년 5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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