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영화 산책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Sr.Julia 2021. 11. 10. 15:46

  꼬마 때 제 방 벽지에는 스머프 마을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알록달록 스머프의 버섯집들이 모여 있고 파란색 피부의 작은 스머프들이 신나게 노는 그림이었는데 이부자리에 들어가 그 벽지를 보고 있노라면 스머프 세상으로 들어가 그들과 뛰어노는 상상이 저절로 되곤 했습니다. 어릴 적을 생각하면 가끔 방안을 화사하게 채웠던 그림들이 떠오르고 그럴 때면 그 기억으로 배시시 미소 짓게 되지요. 그리고 생각합니다. 나와 같이 놀았던 그 많은 스머프들은 어디 있을까? 혹시 저처럼 이런 동화 속 친구들이 있으셨는지요? 바쁜 일상생활에 치여 잊고 지내다가 문득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오늘은 그처럼 마음이 따듯해지고 정화되는 영화 한편을 나누려고 합니다.

  원제는 <크리스토퍼 로빈(Christopher Robin)>이지만 우리말 제목은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입니다. 스머프 만큼이나 어린 꼬마들의 친구였던 푸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많으시지요? 꿀통을 들고 좋아라! 하던 그 푸우 맞습니다. 이 영화는 어릴 때 만났던 푸를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크리스토퍼 로빈의 이야기입니다.

  잠시 줄거리를 이야기해 드릴게요. 이 글을 읽고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모든 내용을 적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영화를 보면서 제가 다가왔던 부분을 나누는 게 좋겠지요?

  어린 로빈의 집 옆에는 헌드레드 에이커 숲으로 들어갈 수 있는 비밀의 문이 있습니다. 이 숲에는 곰돌이 푸와 이요르, 피글렛, 티거와 같은 동물 친구들이 살고 있습니다. 로빈이 집을 떠나 기숙학교로 가는 날 숲속 친구들은 이별 파티를 열어주지요. 푸는 로빈에게 자신들을 잊지 말고 항상 기억해달라고 말합니다. 로빈 역시 백년이 지나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작별하게 되지요.

  하지만 현실 세계에 돌아온 로빈은 학교에서는 엄격한 규율 속에 공부해야 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된 후에는 더욱 빨리 철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인이 돼서도 로빈의 시간은 바쁘지 않은 날이 단 하루도 없이 정신없이 지나갑니다. 사랑하는 여인 에블린을 만나 결혼하지만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로 떠납니다. 전쟁에서 돌아온 후로는 가방 회사에 들어가 동료들의 몫까지 일하는 그야말로 성실한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매일같이 계속되는 야근과 휴일마저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가족들과의 사이는 점차 소원해지게 됩니다. “당신은 지금 일에 만족하나요?” 라고 묻는 아내에게 로빈은 지금 열심히 일해야 미래가 더 좋아질 거라 말합니다. 현실에 있는 우리로서도 로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수긍하듯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 어머니들이 가족들을 위해 이처럼 헌신하며 사시니까요. 하지만 가족보다 일을 택한 로빈에게 에블린은 말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당신이에요.” 그러나 막중한 현실의 무게에 눌린 로빈은 집에 남아 밀린 회사 일을 하고 아내와 딸만 주말을 보내기 위해 시골집으로 내려갑니다.

  바로 이때 푸가 있는 에이커 숲에서 사건이 벌어집니다. 푸의 친구들이 모두 사라진 것입니다. 언제나 로빈을 떠올리며 그리워하던 푸는 로빈이라면 잃어버린 친구들을 찾아 줄 거라 여기고 비밀의 문을 열고 로빈의 세상 안으로 들어옵니다. 도시 한가운데 살고 있는 로빈 앞에 어릴 적 친구였던 푸가 나타나자 로빈은 깜짝 놀랍니다. 푸에게서 친구들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듣지만 그가 해줄 수 있는 건 푸를 에이커 숲으로 데려다 주는 것 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혼자 비밀의 문으로 터벅터벅 들어가는 푸를 보며 측은한 마음이 든 로빈은 푸와 함께 숲속친구들을 찾기 시작합니다. 친구들은 밤새 거대한 바람이 불자 피신해 있었고 푸와 헤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친구들은 로빈을 보고서는 괴물 헤팔럼이라며 잔뜩 경계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친구들은 한 번도 어른이 된 로빈을 본적이 없으니까요. 우여곡절 끝에 로빈과 친구들은 재회를 하고 푸와도 옛 기억을 떠올리며 화해의 시간을 갖습니다. 이제는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 하지만 곧 다른 사건이 이어지게 되는데 로빈의 딸인 매들린과 숲속 친구들이 로빈을 도와주겠다고 모험을 시작한 것이지요. 이후 내용은 영화를 보셔도 될 것 같아요.

  제가 나누고 싶은 것은 로빈이 잊고 지냈던 마음을 되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어린 아이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건 자연스런 이치이지요. 어른이 될 때까지 키도 자라고 몸도 자랍니다. 거쳐야 하는 인생의 여러 단계도 있습니다. 어린 아이일 때는 숲속 친구들과 마냥 뛰어놀았지만 학교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해야 했고, 성인이 되서는 사랑하는 이와 가정을 이루고, 직장에서는 여러 가지 고충을 겪을 때도 많았지만 책임감 강한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로빈은 가족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가장이자 성실한 직장인이 된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의 일을 걱정하고 근심하느라 지금 자신의 곁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숲속의 친구들이 모두 사라져서 푸가 로빈을 찾아온 것은 바로 이 때입니다. 미래에 대한 계획과 염려가 커져서 지금 함께 있는 이들과 나누어야 할 마음의 자리가 사라진 것입니다. 철이 들고 생각이 자란다고 마음이 줄어들 필요는 없는데 우리는 흔히 생각과 마음, 이성과 감정을 비율적으로 계산합니다. 생각과 이성이 자라면 마음과 감정이 줄어드는 것처럼 말이지요. 정말 그럴까요?

  저희 수도원에서는 기도를 시작하고 마칠 때 스승 예수님께 대한 호칭기도를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스승 예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예수님은 진리이시며, 길이시고, 생명이심을, 인간의 생각과 의지와 마음의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기도입니다. 생각이 자라는 만큼 마음과 의지도 자랍니다. 인간은 전 존재로 성장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생각이 자란만큼 마음의 자리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생각이 자라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만큼 마음도 넉넉해져서 더 많은 것들을 보살피고 품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난 길을 잃었어.”라고 고백하는 로빈에게 하지만 내가 널 찾았잖아. 안 그래?”라며 푸는 로빈을 안아줍니다. 혹여 로빈처럼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으로 길을 잃었다고 여겨진다면 잠시 멈추어서 마음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그리고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님을 불러보세요. 그분은 언제나 우리를 찾고 계시고 언제나 너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20)고 하신 우리의 친구이시니까요.

 

<사목정보> 2021년 1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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