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영화 산책

바베트의 만찬.1987

Sr.Julia 2022. 2. 3. 09:54

-행복이 전해지는 밥상-

 

  2022년 첫 번째로 나누고 싶은 영화를 생각하다가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바베트의 만찬>이었습니다. 어쩌면 많은 분들이 보셨을 수도 있지만 다시 보아도 좋은 영화라서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1987년에 나온 꽤 오래된 영화이기에, 이야기를 떠올리시도록 먼저 줄거리를 말씀드릴게요.

  영화는 덴마크의 작은 어촌마을에서 시작됩니다. 마르티나와 필리파 자매는 목사인 아버지와 함께 가난하지만 독실한 신앙심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이 마을에서 가까운 숙모집에 와 있던 스웨덴의 젊은 장교인 로렌스는 우연히 마을에서 마르티나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첫눈에 반하게 되지요. 로렌스는 마르티나를 만나기 위해 교회 모임에도 계속 참석합니다. 하지만 성공 지향적인 삶을 추구하는 젊은 로렌스에게 신심 깊고 금욕적인 마르티나와 그녀 가족은 가까이 하기에 부담스럽습니다. 결국 로렌스는 스웨덴으로 돌아가고 황실 귀족과 결혼하여 부와 권력을 얻게 되지요. 또 다른 자매인 필리파는 굉장히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습니다. 휴양차 이 마을에 온 프랑스의 유명 성악가인 파핀은 필리파가 부르는 성가소리에 이끌려 교회로 들어옵니다. 필리파의 재능에 감동한 파핀은 그녀를 세계적인 성악가로 만들고 싶어 하지요. 하지만 교회 성가만 부르던 필리파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 같은 세속적인 노래를 부르면서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필리파는 함께 떠날 것을 바랐던 파핀의 제안을 거절하고 파핀 홀로 프랑스로 돌아가게 됩니다. 영화의 앞부분은 마르티나와 필리파 자매가 어떤 이들인지 소개합니다.

  그렇다면 바베트는 어떻게 이 마을에 오게 되었을까요? 세월이 한참 지난 후 목사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두 자매는 독신으로 살며 황혼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비바람이 거센 어느 밤, 바베트는 파핀의 편지를 들고 자매의 집을 두드립니다. 전쟁 중에 남편과 아들을 잃은 바베트가 덴마크로 떠나려하자 그녀의 지인이던 파핀이 두 자매를 소개해 준 것입니다. 가난한 살림에 하녀를 고용하는 것이 난감한 자매였지만 자포자기한 듯한 바베트를 보며 그녀와 함께 살기로 합니다. 바베트는 단출한 살림이지만 정성스럽게 요리를 하고 자매들이 했던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 봉사를 하며 마을에 적응해 갑니다.

  14년이란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바베트는 프랑스 복권에 당첨됩니다. 상금으로 일만 프랑의 거금이 주어졌습니다. 마르티나와 필리파는 부자가 된 바베트가 자신들을 떠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바베트는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목사의 생일 100주년 만찬을 자신이 마련하겠다는 것이지요. 만찬에 초대할 사람들은 동네 주민들과 오래전에 떠났던 로렌스 장교와 그의 숙모입니다. 그 즈음 마을 주민들은 예전의 잘못을 들추며 미워하고 질투하며 싸우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는 자매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두 자매는 만찬을 계기로 마을 사람들이 화해하기를 바랐지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바베트가 만찬용으로 가지고 온 생경한 식재료를 보고 질겁해버린 것입니다. 평생 마른 생선과 딱딱한 빵만 먹던 그들은 바베트가 요리할 프랑스 요리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이지요. 살아있는 거북이와 메추라기들, 각종 술들과 화려한 식기들이 주방에 채워지는 것을 보며 자매들은 바베트가 마녀처럼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두려운 마음에 동네 사람들에게 절대 음식에 대해 칭찬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만찬 당일, 최고 레스토랑에서나 볼 수 있는 화려한 만찬 식탁이 자매의 집에 차려졌습니다. 식탁에 앉은 열두 명의 손님은 바베트가 준비한 음식을 먹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약속한대로 누구도 음식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알지 못했던 단 한사람 로렌스 장군만은 최고급 거북이 스프와 값비싼 와인을 맛보며 감탄을 잇습니다. 손님들 역시 그릇째 들고 음식을 먹을 만큼 맛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장군이 음식을 칭찬하는 것은 계속 외면합니다. 하지만 생전 처음 보는 프랑스 요리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최고 샴페인에 취하면서 어느새 테이블 분위기는 흥겨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동안 서로 헐뜯고 시기하며 지냈던 마을 주민들은 바베트의 만찬 식탁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고백하며 화해하고 용서하기 시작합니다. 로렌스 장군 역시 식탁에 오기 전까지 인생의 허무함에 우울해있었지만 바베트가 만든 사랑의 향연으로 마음이 활짝 열리며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만찬이 끝난 후 서로에게 축복을 빌며 손님들이 돌아가자, 바베트는 자매에게 자신이 받은 복권 당첨금을 만찬에 모두 썼다고 말합니다. 한 끼 식사에 가진 모든 것을 써버린 바베트를 보며 자매들은 어쩔 줄 몰라 하자 바베트는 이렇게 말하지요. “이 만찬은 여러분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어요. 카페 엥글레에서 최고의 노력을 들여 요리를 만들었을 때 너무 행복했지요. 예술가는 결코 가난하지 않아요.” 예술가가 작품을 창조하듯이 행복했던 그 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요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바베트에게도 최고의 만찬이 되었던 것입니다.

무대밖에 있는 관객의 입장에서 우리는 바베트가 만찬 식탁을 차리기까지 어떠한 희생과 노고를 쏟았는지 봅니다. 일만 프랑의 거금을 한 끼 식사를 위해 내놓을 뿐만 아니라 자신은 그 식탁에 앉지 못하면서도 식사를 하는 이들을 위해 정성을 다해 음식 하나하나를 준비합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그녀의 음식을 먹는 이들 중에는 그러한 사실을 하는 이는 로렌스 장군 외에 없습니다. 어쩌면 로렌스는 우리에게 바베트를 대변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던 인물인 듯합니다. 그렇지만 영화 마지막에서 바베트의 말을 들어보면 로렌스 장군의 증언도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최고의 셰프로서 최고의 노력을 기울여 요리했고 그것을 먹는 이들이 행복했던 것처럼 그녀 역시 행복했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음으로써 얻게 되는 행복이 그녀 안에 충만했기 때문이겠지요. 바베트가 차린 만찬이 희생과 헌신 그리고 봉헌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인지 바티칸에서는 이 영화를 종교 영화로 분류하였습니다. 바베트가 차린 식탁이 성목요일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나누신 주님 만찬과 흡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고로 <바베트의 만찬>1995년 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아 바티칸에서 뽑은 45편의 최고의 영화(Best Films)’ 중 하나입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참 단순하지만 여운은 꽤 길게 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이 영화를 보고 싶었을까? 왜 이 영화를 소개하고 싶었을까? 두 해가 지나도록 계속되는 코로나 펜데믹으로 잊고 지내던 수도원의 식탁 풍경이 그리워서 그랬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 수도원에서는 식사 시간이 친교의 장()입니다. 하루 동안 각자 사도직을 하던 수녀님들이 식사시간에 모여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꽤 왁자지껄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상황이 계속되면서 식사 시간에 침묵은 물론 얼굴을 보며 마주 앉을 수도 없고 띄엄띄엄 앉아 식사하게 되었습니다. 이전과 너무나 다른 식탁 분위기에 처음에는 너무 낯설어서 식사가 아니라 끼니를 때우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싶었던 것은 아마도 친교의 자리였던 식탁이 그리웠기 때문이구나 싶었습니다.

  여러분의 식탁은 어떤 풍경인가요? 오늘은 저마다의 음식들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보이지 않게 땀 흘리고 헌신한 많은 이들이 있었음을 잠시라도 기억해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그리고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식구(食口)들과 벗들과 함께 친교를 나누시는 밥상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사목정보> 2022년 1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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