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쁜 소식을 전해야 하는 새로운 대륙"
앞으로 인류가 살게 될 세상을 상상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미래 예측 프로그램이나 SF영화들을 보면, 멀지 않은 미래에 인공지능 로봇 같은 포스트휴먼이 인간과 함께 생활하고 드론 택시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다른 행성으로의 여행도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루에도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공간 역시 더욱더 최첨단의 기술을 갖춘 가상 세계로 변화되겠지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나 구글어스와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시고 카카오톡의 멀티프로필처럼 인터넷 세계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구현해 보신 분이라면 또는 요즘 젊은 세대에서 각광받는 마인크래프트나 제페토를 이용하시는 유저라면 현실 세계가 변화되는 만큼 디지털 공간 역시 지금과는 또 다른 차원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쉽게 예상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앞으로 실현될 것 같은 가상 세계의 미래 버전을 보여줍니다. 이 영화는 1984년 <E.T>에서부터 <인디아나 존스>(1989), <쉰들러 리스트>(1994), <라이언 일병구하기>(1998) 그리고 최근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2021)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불문하고 최고의 영상 스토리를 보여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17년도 작품입니다. 어쩌면 감독의 이름을 들으시고 영화에 대한 기대가 좀 더 높아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감독의 명성만큼 재미있었습니다.
가까운 미래 2045년 미국의 콜럼버스 시티가 영화의 배경입니다. 이곳에는 수천의 컨테이너가 쌓여있는 빈민촌이 있습니다. 바로 주인공 웨이드가 사는 곳입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그가 아침마다 가는 곳은 폐차 더미 속에 있는 작은 아지트입니다. 그곳에는 입체 음향과 동작 감지기가 달린 러닝머신이 가상 세계에 접속하는 프로그램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웨이드가 이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게 되면 상상의 공간 어디든 접속할 수 있게 됩니다. 웨이드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도 먹고 사는 문제로 팍팍한 현실에서 도망치고자 가상 세계로의 탈출구를 찾게 되지요. 그것은 바로 오아시스라는 가상 세계입니다. 게임 개발자인 헐리데이와 모로가 만든 오아시스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숲처럼 힘든 현실을 잊게 만들고 상상의 즐거움에 빠져들게 하는 새로운 디지털 세계의 낙원입니다. 오아시스로 로그인 한 유저들은 우주 공간의 행성들 위에서 골프를 치고, 거대한 폭풍 속에서 행글라이딩을 하거나, 눈 쌓인 피라미드 위에서 스키를 타고, 배트맨과 함께 에베레스트를 오를 수 있습니다. 오아시스에 접속하기만 하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지 될 수 있지요. 자신의 신체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어서 외모를 바꾸는 것은 물론 성별이나 종족, 심지어 만화 캐릭터로도 변신할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인간의 상상이 현실로 이뤄지는 곳, 지상낙원과 같은 곳입니다.
오아시스의 유저들은 자신의 아바타를 갖고 있는데 웨이드는 파지발이라는 아바타로 오아시스에서 살아갑니다. 현실에서는 하루 종일 하릴없이 폐차장 구석에서 러닝머신 위를 달려야 하지만 그의 아바타 파지발은 오아시스에서 최고의 레이서이자 게이머입니다. 파지발의 베스트 프렌드 H는 싸움을 잘하는 전사로 전쟁 행성들을 돌아다니며 아이템을 사냥하고 코인을 얻습니다. 이 둘은 가상 세계 안에서 최고의 친구지간이지만 현실에서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이입니다. 사람들이 잠자고 먹는 최소한의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이유는 헐리데이가 곳곳에 숨겨둔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오아시스에서 살아남고 남들보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아이템을 더 많이 사냥하고 코인을 벌어서 레벨을 높여야 합니다. 득템을 하면 할수록 최강의 아바타가 되는 것이지요.
이제 영화의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볼까요? 사건의 발단은 오아시스를 만든 헐리데이가 죽으면서 남긴 유산에서 비롯됩니다. 헐리데이는 죽기 직전 이스터에그를 오아시스에 숨겨놓고 그것을 찾는 사람이 자신의 모든 재산과 오아시스를 소유한다고 발표한 것이지요. 이스터에그를 갖기 위해서는 세 가지 미션을 통과해서 세 개의 열쇠를 찾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요? 모든 사람들이 헐리데이의 엄청난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미션에 뛰어듭니다. 웨이드의 아바타인 파지발은 물론 H 그리고 첫 번째 미션인 레이싱 경주에서 만난 아르테미스, 그리고 수백만의 식서(seeker)들을 앞세운 거대 기업 IOI의 오너이자 악당인 놀런까지 미션을 성공하려는 아바타들로 오아시스는 넘쳐나게 됩니다. 이스터에그를 차지하게 되는 아바타는 누구일까요? 스필버그 영화를 많이 보신 분이라면 아니, 꼭 그의 영화가 아니라도 누가 최종 승리자가 될지 짐작하시겠지요. 뻔한 결말이라고 생각되겠지만, 현실과 가상의 공간이 연결되고 수수께끼와도 같은 미션들을 풀어가는 과정이 꽤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니 영화를 보시면서 남은 이야기를 확인하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 영화에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것은 가상 세계의 중심으로 나온 오아시스 즉 메타버스라는 소재입니다. 메타버스(Metaverse)! 뉴스에서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메타버스는 최신 미디어 트렌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신조어인데,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 분야의 뉴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합니다. 사실 저는 지난여름 이 단어를 처음 듣고 새로 나온 스마트 버스(smart bus)인 줄 알았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초월 또는 가상이라는 의미를 가진 메타(meta)와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를 합성한 ‘가상 세계’를 의미하더군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인 마인크레프트나 로블록스 또는 네이버에서 만든 제페토도 메타버스의 일종입니다. 영화에서 현실의 웨이드가 오아시스에서는 파지발로 사는 것처럼, 메타버스에서는 아바타들이 친구들과 만나서 게임을 하고 직장에 나가 일도 하고 영화제 같은 행사에 참여하며 다양한 쇼핑이나 취미 생활을 합니다. 실제로 국내 어느 기업에서는 현실의 사무실을 모두 철수하고 직원들이 메타버스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해서 업무를 본다고 합니다. 몸은 집에 있지만 메타버스로 로그인하면 직장 사무실에 출근해서 다른 이들과 함께 일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벌써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환경의 디지털 세계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영화 속 오아시스 세상이 구현될 날도 멀지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현실을 초월한 그 세계가 과연 현실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오아시스는 더 많은 아이템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남들과 경쟁해야 하고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이들을 의심하고 적으로 싸워야 하는 잔인한 약육강식의 세계이기도 합니다. 만약 IOI의 악당 놀런처럼 경제적 이해타산만을 내세우며 인간을 도구화하는 사람이 만들어놓은 가상 세계라면 그곳은 과연 인간들의 낙원일까요? 영화에서 감독은 헐리데이가 숨겨둔 세 개의 미션과 열쇠를 통해 가상과 현실의 구분 없이 잊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그것은 헐리데이가 젊은 시절 함께 오아시스를 만들었던 친구 모로와의 우정, 용기가 없어서 아쉽게 헤어졌던 첫 사랑과의 추억, 그리고 어린 시절 순수하게 즐겨했던 게임의 기억처럼 진짜 현실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최종 승리자가 된 파지발에게 이스터에그를 넘기며 헐리데이는 말하지요. 현실은 두렵고 고통스러운 곳이지만 또한 따뜻한 식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고. 인간은 언제나 현실과 다른 완벽한 세계를 꿈꾸지만 현실의 고통과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완벽한 낙원은 없다고 영화는 말하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초월의 세계, 메타버스 역시 현실과 아무런 연관 없이 만들어진 곳이 아니기 때문이겠지요.
현실 세계와 맞닿아있으면서 여기저기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메타버스를 보면 신앙인으로서 또 하나의 사명이 주어졌다고 여겨집니다. 그곳 역시 인간들이 살아가는 세계이고 그곳에도 기쁜 소식이 전해져야 하니까요. 전임 교황이셨던 베네딕토 16세께서 2009년 홍보주일 담화문에 쓰신 내용으로 마무리 할까 합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에 대하여 거의 본능적인 친밀감을 지니고 있는 젊은이들이 이러한 ‘디지털 대륙’을 복음화 할 책임을 지고, 각자 동료들에게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들의 두려움과 희망, 그리고 그들의 꿈과 좌절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모든 인간을 위하여 사람이 되시어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하느님의 ‘기쁜 소식’입니다.”
<사목정보> 2022년 3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