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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이성>정리

Sr.Julia 2007. 3. 14. 18:11
 

<신앙과 이성>


 인간의 삶의 근본적인 질문들, 곧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악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 이 세상이 끝난 다음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것들은 인간의 정신을 언제나 압박해온 의미탐구라는 공통의 원천으로부터 솟아나는 질문들이다. 사실 이 문제들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인생항로를 결정짓게 된다.

 교회는 파스카 신비를 통하여 인간 생명에 관한 궁극적 진리라는 선물을 받은 순간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세상에 선포하는 복음전파의 길을 달려왔다. 또한 사람들은 진리를 더욱 많이 알게 되어 그들의 삶이 더 인간다워지도록 만들 수 있는 원천들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원천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철학이다. 인간은 인생의 궁극적 진리를 발견하려는 열망으로 자기 자신을 좀더 잘 이해하여 자기 실현을 진전시킬 수 있게 해주는 지식의 보편적 요소들을 취득하고자 한다. 그리고 지식의 이 근본적 요소들은 창조에 대한 명상으로 그들 안에 일깨워진 경이로부터 솟아난다.

 교회는 철학 안에서 인간 생명에 관한 근본적 진리들을 알게 해주는 길을 본다. 동시에 교회는 철학을 신앙을 더 깊이 이해하고 복음의 진리를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전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철학적 사고가 인간생명의 실재와 그 표현형식들에 가까이 다가가는데 성공했지만, 동시에 인격적 실존 존재 그리고 신에 관련된 진리에 대한 근본적 물음을 던질 줄 모르는 실존적, 해석학적, 언어 철학적 주제들을 따르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에 교회와 주교들은 하느님께서 가르치신 가톨릭 진리의 증인으로, 신앙의 진리를 재확인하는 가운데 동시대인들에게 우리의 인식능력에 대한 진정한 신뢰를 회복시켜주는 것은 물론 철학이 그 고유한 충만한 품위를 복원, 발전시키도록 촉구할 수 있다.

 교회가 인간에게 제공하는 지식은 신앙으로 받아들인 하느님의 말씀에 뿌리를 두며,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알려지기를 바라신다. 인간이 하느님에 관한 지식은 인간 정신이 인생의 의미에 관하여 알 수 있는 모든 것을 완성시켜 준다.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맡겨주신 당신 자신과 당신의 생명에 관한 진리 즉 계시는 시간과 역사 속에 담겨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신비 속에서 단 한번 결정적으로 선포되었으며, 하느님 백성에게 역사는 성령의 끊임없는 활동으로 계시 진리의 내용이 충만히 표현될 수 있도록 따라 걷는 여정이 된다.

 그리스도의 계시 안에서 전해진 진리는 더 이상 어떤 특정 장소나 문화에 국한되지 않고, 그것을 인간 삶을 위한 절대적으로 타당한 의미의 원천이 되는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이에게 제공된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아버지께 이르는 통로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계시는 신비를 간직하고 있으며 오직 신앙만이 그 신비를 올바로 꿰뚫어 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그리스도교 계시 진리는 모든 인간이 자신들의 삶의 신비를 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그것은 절대적 진리로서 인간에게 그 피조물로서의 자율성과 그들의 자유를 모두 존중하면서도 그들이 초월적 세계에 대해서 개방적인 태도를 취하도록 초대하고 있다.

 인격적 실존의 궁극적 목적은 신학과 철학의 공통주제이다. 따라서 그 방법과 내용이 다름에도 이 두 학문은 신앙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결국에는 삼위일체 하느님을 명상하는 충만하고 끝없는 기쁨으로 인도할 생명의 길을 지시하고 있다.

성서는 신앙으로 얻어지는 지식과 이성으로써 얻어지는 지식이 얼마나 깊이 연관되어 있는지를 명백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성의 지식과 신앙의 지식사이에는 분해될 수 없는 깊은 통일성이 있다. 신앙은 이성의 자율성을 철폐하고, 그 활동 영역을 제한하기 위해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간 존재자가 이 사건들 속에 개입하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개입하는 것이다.

 인간은 이성의 빛을 통해서 어느 길을 택할 것인지를 알 수 있지만 오직 신앙의 지평 안에서 그들이 추구해야 하는 올바른 정신을 갖추고서야 비로소 신속하게 그 목표에까지 따라갈 수 있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신앙은 이성이 알고자 하는 바를 올바로 얻게 하고 진정한 의미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이성을 해방시킨다. 인간은 신앙의 비추임을 받을 때 모든 것과 자기 실존의 깊은 뜻을 깨닫게 되므로 이성을 통하여 진리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성서저자는 정당하게 하느님을 두려워함을 지혜의 시작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성서에서 바오로사도는 지혜문학을 좀더 깊이 이해하도록 도와주면서 인간에게 형이상학적 탐구능력이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인간이 하느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인해 진리 인식능력은 약화되었고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철학에 대해서 한결같은 분별력을 갖추어야 하는 까닭으로 본다.

 모든 인간은 알기를 바란다. 이것은 우리 각자가 우리 자신이 누구이고 또한 사물들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데 얼마나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론적 영역의 탐구와 함께 실행되어야 하는 선을 지향하는 실천적 탐구에서도 진리를 추구한다. 자유롭고 올바른 의지에 따라 윤리적으로 행동할 때 인간 인격은 행복에 이르는 길로 접어들고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각자의 생애에서 선택되고 추구된 가치들이 참된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본질적이다. 왜냐하면 오직 참된 가치들만이 인간이 자신을 충만하게 실현시킬 수 있고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도록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참 진리는 보편적으로 드러난다. 만일 어떤 것이 참되다면 그것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에게도 참된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이 보편성을 넘어 사람들은 그들의 모든 탐구에 의미와 답을 줄 어떤 절대적인 것을 추구한다. 이것은 모든 것의 토대 역할을 할 궁극적인 어떤 것으로 최종적 설명, 최고의 가치를 추구한다. 이 모든 사람의 마음을 비추고 있는 것은 진리의 확실성과 그 절대적 가치의 확실성에 도달하려는 바람이다.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진리는 철학을 통해서 도달할 수 있는 진리들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충만한 진리로 이끌어 준다. 하느님은 과학자들이 신뢰하며 의존하는 사물의 자연적 질서의 가지성과 합리성을 확정하고 보장하시는 분이시며, 당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계시하시는 동일한 분이시다. 자연적인 진리와 계시 진리의 이 통일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생생하고 인격적인 방법으로 구현되었다. 인간 이성이 미처 알지 못한 채 찾고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발전될 수 있다. 그분을 통해서 계시된 것은 그분 안에서 그분을 통해서 창조되고 따라서 그분 안에서 그 충만을 발견하게 되는 충만한 진리이다.

 초창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복음과의 만남은 인생의 의미에 관한 해답을 제공하였기 때문에 철학자들이 탐구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엉뚱하고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했지만, 신중한 분별력으로 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성 유스티노는 그리스도 진리 안에서 확실하고 유일한 철학을 발견하였다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하였다. 그리고 오리게네스, 아우구스티누스 등 그리스도 사상가들은 철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플라톤 사상, 그리스 사상을 그리스도교화 시켰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와 라틴세상의 사상들을 포용하면서 철학과 신학 사이의 최초의 위대한 종합을 이루었으며, 성 토마스는 이성의 빛과 신앙의 빛은 둘 다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따라서 양자사이에는 어떤 모순도 있을 수 없다고 논증하며, 지식이 지혜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성령의 역할을 깊이 깨닫고 있었다.

 그러나 중세후기부터 철학의 대부분이 그리스도교 계시로부터 갈라져 신앙의 내용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철학이 생기게 되었고, 명시적으로 정반대의 입장에 이르게 되었다. 또한 근대 문화 안에서 철학은 그 역할 자체가 바뀌면서 보편적 지혜와 연구로부터 멀어져 점차 인간의 여러 영역가운데 하나로 위축되었다. 역사는 특히 근대 철학이 걸음을 잘못 내디뎌 오류에 빠지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교도권은 결함 있는 철학적 논의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적인 철학적 견해들이 계시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을 위협하거나 중대한 오류의 가능성이 있는 거짓되고 단편적인 이론들이 교회의 신앙을 혼란시키려 할 때 분명하고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도권은 그리스도교 가르침에 위배되는 견해들과 철학들을 권위 있게 비판적으로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지혜와 지식의 온갖 보화가 그리스도안에 감추어져 있음을 알고 있고, 신비의 인정으로 이끄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철학적 탐구를 자극하며 개입한다.

 또한 교도권은 철학이론들의 오류와 일탈을 지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탐구의 진정한 쇄신의 기본 원리들을 강조하고 특정방향을 지시한다. 교황 레오 13세는 회칙 <영원하신 아버지>에서 철학적 사고가 신앙과 신학에 얼마나 깊이 공헌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철학에 대한 교회의 강한 관심은 신학작업과 철학적 진리 탐구를 하나로 묶는다. 이로부터 신앙에 배치되지 않는 철학적 사고를 분별하고 촉진시켜야 할 교도권의 의무가 나온다.

 여러 시대를 통해 발전되어온 철학은 교의신학, 기초신학, 윤리신학 등 신학에 여러 면에서 기여를 했다. 이런 철학적인 기여는 객관적 진리가 무엇인지를 식별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신학과 철학의 관계에서 오는 풍요로운 결실은 그리스도교의 위대한 신학자들의 경험을 통해서 입증되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계시는 철학적 사고와 신학적 사고 사이의 상호관계의 진정한 접촉점이 된다. 그러므로 신학자와 철학자들이 진리 자체의 권위에 복종함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이 일치되는 철학이 발생되도록 협력해야 한다. 이런 철학은 문화와 그리스도교 신앙사이의 만남의 장이 되고, 신앙인과 비신앙인 사이의 이해의 장이 될 것이다.

 성서 안에서 철학의 근본적 확신은 세계와 인간 생명은 의미를 지니며,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오는 충만을 추구한다. 그러나 현대의 절충주의, 역사주의, 과학주의, 실용주의, 허무주의 등은 의미추구를 어렵게 하고, 의미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따라서 철학이 하느님 말씀에 일치되기 위해서는 삶의 궁극적, 보편적 의미를 추구하는 지혜적 차원을 회복할 필요가 있으며, 인간의 진리인식 능력에 대한 신뢰회복도 절실하다. 그리고 현상으로부터 토대로 나아가는 진정한 형이상학은 오늘날 철학의 광범위하게 침투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의 그릇된 행동방식들을 교정하기 위한 길로 제시할 수 있다.

 신학 역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들을 쇄신할 필요성과 위탁받은 궁극적 진리를 중단없이 추구해야 한다. 신학은 의미와 진리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형이상학적 해석학의 활용으로 의미 안에 담겨진 진리가 무엇인지 물어야하며, 신앙의 이해를 표현함에 있어서 교의신학에서는 존재의 철학과 윤리신학에서는 철학적 윤리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교회는 신앙과 이성이 서로 지지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각각은 상대방에게 순화시키는 비판과 깊은 이해를 위한 탐구를 계속하도록 자극하며 서로 영향을 미친다. 교회는 인간 존엄성에 대한 옹호와 복음 선포를 위해 사람들이 진리 인식능력과 인생의 궁극적 의미를 위한 갈망을 발견하도록 해야 하며, 철학을 통해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간성을 확인하고 그만큼 복음을 신뢰하며 그리스도께 개방될 수 있다.

 따라서 신학자들은 진리의 형이상학적 차원들을 최대한 복원하고 표현하며, 사제 양성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철학적 준비교육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또한 철학자들은 진정한 지혜와 철학 전통의 흐름 안에서 고유한 지혜와 진리를 복원시키며 하느님의 말씀에서 솟아나는 요구에 개방되어야 한다. 과학자들은 지혜적 지평 안에서 과학과 기술의 성취를 가져오고, 모든 사람들은 끊임없는 진리와 의미탐구에 더 큰 관심을 가지면서 진리의 지평 안에 머무를 때 자신의 자유를 충만히 이해하고 자아의 최고 실현으로서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신학이 신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더 풍부하고 창조적이 될 수 있도록 철학이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자원들을 제공하고, 철학이 복음의 진리의 소리를 받아들이면서도 그 자율성이 조금도 상실되지 않음을 신앙의 지성적 식탁이라고 부른 마리아를 통해 조명해 볼 수 있다.




<신앙과 이성>에 대한 평가


<신앙과 인성은 인간정신이 진리를 바라보려고 날아오르는 두 날개와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진리, 곧 당신 자신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남녀 모든 인간이 하느님을 알고 사랑함으로써 또한 자기 자신에 관한 충만한 진리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회칙 [신앙과 이성]을 읽으면서 현대 사회 안에서 신앙과 이성이 어떻게 조화되어야 하는지 교회가 그 길을 제시함에 있어서 앞으로의 과제가 더 막중하고 책임 또한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현대는 의미 상실의 시대이고,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결핍과 인간의 존엄성, 생명에 대한 경시가 팽배한 사회이다. 그것은 이성(철학)이 신학과 철저히 분리된 근대철학 시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축적되어온 신학과 철학사이의 깊은 골에 의해 인간존재는 스스로 소외되고 시대의 온갖 혼란한 가치관으로부터 위협받는 존재가 되었고, 철학은 보편적인 진리와 지혜를 탐구하던 광범위한 토대를 잃고 인간의식의 지엽적인 부분으로써 전락한 처지가 된 것이다. 따라서 허무주의가 팽배하고 죽음의 문화가 가득한 현대사회 안에서 이 회칙은 인간존재 안에 다시금 하느님의 기운, 생명의 기운을 일으키도록 촉구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한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큰 선물인 이성(철학)과 당신 자신을 스스로 인간에게 드러내시고 사랑의 원천이신 당신 안에서 인간존재가 충만히 실현되도록 이끌어주는 신앙(신학)은 어느 한 가지도 소홀히 하거나 배제될 수 없다. 인간의 역사는 이미 신앙과 이성의 철저한 결별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보여주고 있으며 지금 우리는 바로 그 결과의 가운데에 서있는 것이다.

 사회, 경제, 정치, 과학 등의 영역에서 제기되는 수많은 현대의 도전들은 근본적인 토대를 잃은 인간의 이성에게 제자리를 찾을 것을 요구하는 부르짖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때야말로 교회도 세속화되는 현대의 복잡한 가치관들을 그리스도교적인 가치관으로 전환하며 그리스도의 위대한 전통을 이 시대에 토착화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우선 온갖 혼란한 가치관 속에도 진리이신 하느님을 찾지 않는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앙의 이해가 신앙인의 실제적인 삶에서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 구체적이며 역동적인 그리스도교적인 철학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갈라져나간 철학에게 제자리를 마련해주고, 현대사회 안에서 신앙과 이성이 어떻게 조화로이 일치할 수 있는지 그 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교황님은 <사람들이 진리 인식 능력과 인생의 궁극적이고 결정적인 의미를 위한 갈망하게 만드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며, 문화의 복음화와 이해와 대화의 토대가 마련되어야 함을 말씀하시는데, 이 과제는 그 동안 철학이 신학의 품안을 떠난 그 시간만큼 앞으로도 그 만큼의 시간과 인내, 성찰, 조화를 위한 노력을 필요로 할 것 같다.

 또한 나는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끊임없이 부르시고, 존재의 궁극적인 진리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존재가 충만히 실현되도록 이끄실 것을 믿는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진리, 곧 당신 자신을 알고자 하는 열망을 심어 놓으셨습니다>라는 말씀처럼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당신 자신, 절대자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과 인간 자신의 삶의 신비를 알도록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