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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예수> 정리

Sr.Julia 2007. 3. 14. 18:17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

주석학적 그리스도론

 

 

제1장 역사적으로 살펴본 그리스도론적 기획

1. 주석학적 그리스도론

성서신학이 그리스도 신앙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성서가 말하는 자료를 이용한다면 주석학은 목표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역사적 그리스도론의 자료와 성서를 가지고 작업한다.

주석학의 연구는 특정설화의 사건을 직접적으로 이해하는 투사적 해석과 각각의 성서본문에 담긴 언어와 공동체의 중개 기능을 의식하고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주석방식, 성서 언어를 오늘의 언어로 전환시키는 해석방식을 통해 작업한다.

이 책은 주석학적인 그리스도론 수준으로 연구대상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취하고 여러 정신적 갈래들을 구별하고 비판적이고 가치있는 판단을 이끌어낼 것이다.

2. 그리스도론적 성서인용

최초의 그리스도 면모에 대해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책인 성서에서 출발하였고 따라서 메시아, 하느님의 아들, 주님과 같은 그리스도론적 칭호들이 예수에게 적용되었다. 또한 성서는 그 자체의 중요성뿐 아니라 성서는 예수의 면모를 모세의 율법서와 예언자들의 예언을 통해 해석하고 그리스도를 그 목표로 하면서 예수를 올바로 지칭하는 신적인 도구가 되었다.

바울로는 예수의 말씀과 행위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마르코는 예수의 인격에 관심을 집중시키면서 고유한 그리스도론적인 담론 즉 최초의 복음서를 썼고, 이제 예수는 자신에 대한 기억으로 이루어진 복음서의 고유한 이해원리가 되었다. 교부들과 공의회의 그리스도론은 예표론과 알레고리 방식으로 투사적 해석과 주석을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면서 성서의 숨은 뜻을 발견하려고 했다. 스콜라 시대에는 성서본문을 객관화하고 논증적 신학의 도구로 만들면서 성서와 신학의 거리는 점점 벌어졌고 그리스도의 모습은 도덕적 담론 속에 사라졌다. 스콜라 신학은 신약성서가 보여주는 그리스도론적 모순들을 용납하지 않고 다듬고 평준화시켰는데, 이에 대한 반동으로 반 그리스도교적 독서 방법이 태동되기도 했다.

모방의 해석학적 기술은 성서 말씀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현재 거론하는 모방이 신약성서가 증언하는 예수의 모습에 적합하고 동일한 것인지 그 타당성을 평가하면서 해석학적 담론 안에서 성서는 신실하면서 동시에 현재의 사건을 부각시키는 새로운 말씀의 원리가 되었다.

3. 그리스도론의 다양한 주석학적 경향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문학비평과 역사비평의 분야에서 기본적인 선택을 할 때 발생하며 오늘날에는 이러한 구분이 보다 완화되고 신중하게 언급된다.

주석학적 그리스도론은 상승 또는 하강의 신학적인 그리스도론과 관련된다. 상승 그리스도론은 예수의 인간성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통해 변형되었음을 보여주는 마르코 복음의 노선을 따르며, 하강 그리스도론은 선재하는 말씀이 예수의 인간성을 충만하게 수용하는 요한복음의 흐름을 취한다.

19세기 이후 고고학적인 발굴로 기원에 얽힌 주변상황들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론이 지시적이고 암시적이며, 주석학의 도구 역시 가정적이라는 것을 볼 때 주석학적 담론은 기원 문제를 어느 정도 지시할 수 있을 뿐이다.

신약성서의 각 권에 따라 그리스도의 모습은 서로 다르며 때로는 반대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주석가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첫째 입장은 정경이 표현하는 통일성의 원리에 의해 그리스도론적 차이의 해소시키는데 이것은 근본주의적인 사고에 빠질 수 있다. 두 번째 입장은 신약성서의 그리스도론적 담론의 이질성을 강조하는데, 그것은 최초의 공동체들이 그만큼 다양했기 때문이며, 다양성과 함께 통일성을 지향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4. 주석학의 주요학파

주석학적인 선택은 각자의 분석 수단과 방법론적 도구에 따라 다양하다.

20세기 초 종교사학파의 역사를 토대로 한 사회 종교적 통찰은 현대 연구에 여전히 기초를 제공하지만 예수의 면모가 진화론적으로 전개되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학자들이 부활후의 그리스도와 구별되는 부활전의 예수의 역사를 쓰면서 역사의 예수는 신앙의 그리스도와 대면하게 되었고 성서적 그리스도론은 둘 사이의 차이와 연속성, 불연속성의 관계를 평가해야 했다. 불트만은 예수에 관한 고유한 역사적 자료들을 보다 더 단순한 표현으로 축소시켰고 케제만은 역사적 지주를 보다 더 강화하려고 하였다.

1950년 이후 편집사학파는 각 복음사가들의 고유한 편집 경향, 문학적 구성과정, 주요 신학 사상에 보다 많이 주의를 기울였다. 이로써 신학적 질문과 특별히 그리스도론이 부각되었다. 여기서는 두 가지 주석학적 선택이 가능한데 부활이전의 상황에는 암시적인 그리스도론만이 존재한다는 것과 예수 자신이 이미 부활이전에 모든 또는 몇 개의 그리스도론적 칭호들을 사용하면서 자신의 신원을 확실히 언명하였다는 것이다.

오늘날 복음서 자료에 대해 역사적인 신뢰가 두터워지면서 예수의 역사적 연구가 활발해졌고 권위를 가진 예수의 말씀과 구원 행동으로 인한 암시적 그리스도론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예수 부활이전의 신원에 대해 어떤 범주 안에 제한시킬 수 없고 어록전승의 그리스도론의 차이와 복음서에서 예수에게 부여된 칭호들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남아있다.

 

제2장 목표, 방법, 그리고 구성

1. 공동체적 시각에서

주석학적 그리스도론은 부활이전의 예수를 재구성하기보다 초대 공동체의 그리스도론적 확신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역사가의 작업수준에서 부활이전에 예수가 스스로 메시아, 하느님의 아들 내지 하느님 자신으로 생각했는가에 대해 확실성을 가질 수 없지만 초대 공동체가 보여주는 다양한 예수 모습에서 예수의 인격을 살펴볼 수 있다. 주석학적 그리스도론은 신약성서의 본문과 직접 대면하면서 초대 공동체의 현실적이고 상대적인 다양성을 각각의 공동체의 그리스도론으로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통시적 방법으로 기존의 공동체와 그리스도론적 고백 사이에 존재하는 하나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관계를 더욱 심도 있게 이해하려는 것이다.

2. 사도행전이 제기하는 문제

사도행전 저자 루가는 교회의 일치를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데 초대 공동체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사도행전은 루가 시대에 신자들의 신앙과 선교 행위를 강화하기 위해 씌어진 종교적인 역사이다. 사도행전은 대략 85년경에 저술되었고 상대적으로 후대에 속하는 이 시기에 공동체가 지닌 문제는 제1세대 그리스도인들의 그것과 비교하여 상당히 달랐다. 서기 70년 예루살렘 파괴 후 루가의 사목적 염려는 그리스도인들간의 일치에 집중되었고 자신의 전 작품을 통하여 예수와 제자들 간의 일치의 끈을 강조한다. 우리는 사도행전이 보도하는 많은 역사적 사건들을 과소평가하지 않으면서 루가의 통합적인 이야기를 부분적으로 해체할줄 알아야한다.

3. 방법론의 문제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배경에 대해 정확한 지식에 도달하기에는 자료들이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따라서 개별적인 그리스도론 전승을 비판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이면서 다루고자 하는 작품의 문학적 연대에 대한 주석학자들의 실적과 신약성서 서간들의 친저성에 관해 대다수의 주석학자들이 내린 결론을 받아들이고 다양한 비평적인 학파의 결실을 수용한다.

비판적 거리를 취하면서 역사주의의 함정을 피하고 이중적 매개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언어학적인 매개로 고대 저자의 고유한 언어를 정확히 분석하고, 사회적 공동체적인 매개로 신약성서 본문들이 각각 독자적인 방법으로 교회전승들을 담아내고 있음을 상기한다. 문학적 매개를 통해 각 본문이 표현하는 문학적 사건과 각 교회에서 전승들을 전달한 사람들을 살핀다. 신약성서의 역사가는 전승들을 대결시키고 그 차이를 가늠하면서 초기 공동체 안에 존재하는 차이를 살핀다. 우리는 다양하게 확산되는 몇 개의 확실한 전승을 갖고 있을 뿐이며 따라서 결정적인 판단은 피하고 본문의 침묵과 전승간의 차이를 존중해야 한다.

4. 전체구성

그리스도론 연구에 기여하는 신약성서의 구분과 편성은 예수에게 적용된 칭호들을 나열하고 분류하는 공시적인 시각을 채택하는 것과 신약성서의 문학적 연대표에 따라 배치된 역사 문화적 접근 방식에 따라 통시적 시각을 선택하는 것,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또 다른 그룹들의 초기 그리스도론 칭호에 시선을 집중시키면서 통시적이고 사회 종교적인 접근을 시도하는 방법이 있다. 제3장에서는 초대 공동체의 다양성을 확인하고 그 의미를 역사적으로 정립시킬 것이다. 제4장은 예수의 면모를 인지하고 각 공동체와 관계된 최초의 칭호들을 고찰한다. 제5장은 그리스도론적 고백을 다루며 제6장은 아들, 주님과 같은 칭호에서 출발하여 예수의 지존한 모습을 다룰 것이다. 제7장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 공동체들이 ‘예수의 신성’에 대한 내용과 표현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보게 된다.

5. 부록 : 참고도서 목록

첫 번째 접근 방법에 의거하여 예수에게 부여된 다수의 칭호들을 열거하고 이들에게 가치가 있는 성서적인 배경 지식을 수집한다. 두 번째 통시적인 접근 방법에 따라 최초의 신앙고백에 대한 연구를 보며, 유다계 그리스도론, 바울로의 그리스도론에 대한 연구, 어록 전승의 그리스도론, 공관복음에 고유한 그리스도론, 요한계 전승의 고등 그리스도론, 예수에 대한 다른 그리스도론적 전승을 상기한다.

6. 연대표

 

제3장 초대 그리스도 공동체

최초의 그리스도 공동체의 존재와 모습은 신약성서, 유다교의 옛 위경, 쿰란의 발굴물, 교회 교부들의 작품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1. 1세기의 유다교의 다양성

그리스도교의 다양성은 70년 이전 유다교의 다양성에 근거를 둔다. 1세기 이스라엘에는 다양한 집단들이 있었고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사두가이, 바리사이, 에세네, 로마를 상대로 무력항쟁을 하는 사람들로 구분하는데 각 유다인 그룹은 성전과 율법, 그리고 조상들의 전통과 이방 민족들에 대한 관계를 나름대로 정립하고 있었고, 이스라엘의 종교사회도 다양한 종교적 실천으로 나뉘어 있었다.

예수도 이러한 다양한 그룹의 유다사회 안에 또 이방세계에서 점차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반유다주의 영향아래 하나의 제자단을 구성하였고 교회가 탄생되었다.

2. 그리스도인들의 점진적인 자기 동일성의 확립

처음 이방인들은 그리스도인들을 유다인들과 동일시하였고 유다인들도 이들을 회당에서 단번에 추방하지는 않았다. 신앙인들이 다른 유다인, 이방인들과 구별된 것은 신앙공동체가 예수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의식을 갖게 되면서였다. 바로 예수에 대한 시각이 공동체로 하여금 이방인들과 다른 유다인들과 차이를 만들어준 결정적인 요인이다.

비 그리스도교 자료들은 42년 또는 49년 로마의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추방과 62년경의 야고보 순교이야기, 로마 화재 후에 있었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첫 박해사건을 언급한다. 이처럼 예루살렘 성전 파괴이전 이방인들은 이미 유다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구별하였다. 고대 유다교 문학작품에서 통해 볼 때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았던 유다인들은 1세기 말 자신들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구별하였다. 그에 반면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6세기까지 유다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인하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문헌을 살펴보면 공동체 신원에 대한 확인 작업은 각 공동체가 속한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이루어졌다. 회당과의 차별화는 예수를 이해하는 기준에 따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졌고, 사도행전과 바울로도 점차 강하게 교회와 회당의 단절을 강조한다. 최초의 그리스도론은 다른 세상과의 단절과 인정에서 탄생했으며 예수라는 이름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을 유다세계와 단절하게 만들었다.

3. 그리스도인들의 다양한 명칭

그리스도인들의 점진적인 신원 인식처럼 그들의 명칭도 고정되지 않고 다양했다. 오늘날 교회라는 지칭도 ‘그리스도안에 있는 이들’ ‘회당’ ‘공동체’ ‘친교’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명칭이 나오다가 교회라는 말이 최종적으로 수용되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도 갈릴래아사람, 나자렛사람, 나조라사람,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이 있다가 약 40년부터 안티오키아에서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바울로는 예수의 메시아적 동기를 강조하는 것을 피하면서 메시아라는 말을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유명사로 변형하여 사용했고 ‘그리스도인’ 대신에 ‘그리스도안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4. 서로 다른 공동체들

초대교회는 먼저 유다계와 히랍계로 구분되고, 그중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출신 배경, 지역 연고, 언어사용, 공동체의 지도자, 기존 공동체에 보존되었던 그리스도론적 동기, 선교적 이상에 따라서 구분되었다. 출신배경에 따라 침례주의자들, 침례운동 출신, 바리사이파 출신, 에세네파출신이 존재했을 가능성을 있으며, 지역연고에 따라 갈릴래아 전승, 예루살렘 전승, 어록전승으로 구분하며, 부활사건을 전후로 하는 두 그룹과 율법과 성전 등에 대해 급진적 태도를 갖는 유다-히랍계 그리스도인이 있다.

또한 모든 디아스포라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유다인들을 대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선교도 빠르게 이루어졌다. 안티오키아는 바울로, 베드로, 요한과 그의 제자들이 활동한 무대였고, 교회일치 개념이 아직 성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각 공동체는 교회와 그리스도에 대해 자신을 정립하는 방식이 상당히 달랐다.

5. 위대한 사목적, 그리스도론적 선택들 : 예루살렘 회의

이방인들이 유다계 공동체에 들어오면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네 가지 입장을 갖는다. 첫째 전통적인 입장은, 신앙인들은 선민에 온전히 속해야하므로 이방인들도 할례를 통해 접목되어야 하며 예수를 종말론적으로 모세와 같은 예언자로 강조한다. 두 번째 입장은 율법을 준수하는 데에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이방인들에게 유연한 태로를 갖는 예루살렘의 야고보와 베드로에 의해 대표되는데 이들이다. 하지만 예루살렘 회의의 네 가지 교령으로 선민과 만백성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지만 여전히 유다계와 희랍계 사이의 구별이 있었다. 세 번째는 바울로의 입장으로 같은 예수가 모든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유다계와 희랍계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근원적 평등을 인정한다. 메시아적인 칭호를 피하고 예수를 주님, 하느님의 아들로 선포한다. 네 번째는 극단적인 바울로의 성향으로 모든 율법을 거부하며 유다성의 표지인 할례를 지워버리고 하면서 심지어 배교까지 하였다. 이 자유분방한 그리스도인들은 전 영지주의에 쉽게 사로잡혔고 히랍적인 방식으로 주님을 찬양하였다.

히랍계 그리스도인들 역시 유다계와 유사한 경향으로 갈라졌다. 첫 번째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 회당에 출입하고 유다인처럼 살던 이들로 상당수가 그리스도를 고백하면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일체를 이루었다. 바울로는 그리스도께 개종한 뒤 완전한 구원을 위하여 스스로 유다인들처럼 행동하는 이방계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을 거부한다. 또 다른 입장은 바울로가 좋아했던 희랍계 그리스도인들로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알고 있었고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종교적 지위의 평등을 확신하였다. 한편 자유분방하고 급진적인 바울로 추종자들은 희랍적 방식의 지혜와 지식에 부여된 과장된 가치에 의존하면서 전 영지주의 집단으로 전향하였다.

이처럼 초대 그리스도 공동체의 삶은 동요에 가득차있었으며 사도들의 활약과 정경 복음서의 탄생이 필요했다. 가명 바울로 서간 시대에 이르러 유다계와 희랍계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를 이룬다는 확신에 이르렀다. 다양한 공동체의 일치운동은 규범적인 그리스도론에 도달하고자 하는 보편적인 노력과 일치하였고 보다 통일된 담론은 4세기에 이루어 가능했다.

6. 부록 : 나자렛 사람들과 에비오니스트

에피파네스에 의하면 나자렛 사람들은 하느님과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믿었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예로니모 성인도 율사들의 권위를 부정하고 바울로의 복음과 선교를 인정하면서 유다민족이 주님을 인정할 날을 고대한 나자렛 사람들을 소개한다.

가난한 사람들을 뜻하는 에비오니스트는 성전과 유혈 제사를 거부하고 예수를 참된 예언자로 지칭하지만 이들의 사상은 광범위하게 영지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제4장 예수의 면모에 대한 인지

그리스도 공동체들에게 예수의 면모는 부활하신 모습에서 출발하여 부활이전의 행위와 사건들에 대한 회상으로 비로소 완전하게 그려진다. 부활사건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에 의해 선포되는 예수 말씀의 기폭제였다. 비록 예수 생전에 스승, 예언자, 메시아 등의 다양한 칭호가 나름대로 있었지만 그리스도론은 부활과 더불어 시작된다.

가장 오래된 전승 ‘마라나타’는 예수의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며 그의 구원행위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인자’ 표현도 미래의 심판뿐 아니라 현재 안에 제시하는 구원행위를 부분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주석학자들은 첫 부활전승을 전하는 바울로이전의 요소들을 ‘예수는 주님이시다’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부활로 지적한다. 그러나 다른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이라는 말이 예수의 수치스러운 죽음을 상기시키므로 예수의 죽음이라는 동기를 회피한다. 따라서 부활사건에 적용된 부활용어들이 모든 공동체 안에 다 수용된 것은 아니다.

부활신앙은 관련 공동체에 따라 다른 언어로 표현되었고 살아있는 예수에 대한 칭호 역시 장소에 따라 다양했다. 혹자는 십자가 달렸다가 부활하신분의 면모를 강조하고 혹자는 고양 받으신 분의 영광을 강조한다.

또한 그리스도론적 칭호들은 공동체의 다양한 상황에 적응하고 또 변화했다. 어떤 칭호도 독점되지 않고 여러 칭호들이 서로 대결하고 충돌하며 서로 교정하고 힘의 균형을 이루면서 전체적인 통일성을 이루며 다듬어졌다.

1. 침례주의자들과의 논쟁과 예수의 예언자 칭호

그리스도론은 예수와 세례자 요한의 행위, 인격의 차이로부터 탄생한다. 요한은 세례를 통해 하느님과의 관계를 설정하지만 예수는 요한과의 연속성에 있으면서도 더 이상 세례가 아닌 예수 인격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그리고 세례자 요한에 대한 평가는 그리스도인 그룹에 따라 달랐는데 복음전승에서 세례자 요한은 과거 시대의 끝 인물이나 새로운 시대의 첫 인물 등 모순되게 나타나며 바울로는 그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요한과 예수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었던 칭호들 중 ‘의로운, 거룩한‘ 칭호는 예수의 면모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황급히 사라졌다.

세례자 요한이나 예수에게 붙여진 ‘예언자’ 칭호는 계속 논쟁이 되었다. 특히 신약에서 예언자 칭호는 메시아적 인물이 서로 혼동되었고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지닌 칭호였고 1세기 폭력적인 거짓 예언자들과의 차별을 위해 예수를 예언자로 칭하는 것은 거부되었다. 예언자 칭호 없이 예수의 예언적 행위를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예언자적 말씀과 세례 때 선포된 예언자적 칭호이다.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성서를 끊임없이 읽음으로써 예수를 엘리야, 모세, 다윗 등 과거인물과 비교, 평가하면서 새로운 엘리야, 새로운 모세로 불렀지만 어느 것도 충분하지 않았다.

절대적 용법으로 사용된 ‘오시는 이’ 칭호는 메시아 칭호는 아니지만 예수를 메시아로 환대하며 예수에게로 희망이 집중시킨다. 예수에게 적용된 ‘종’ 칭호는 유다적인 색채가 강하고 희랍세례에서는 경멸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금시 사라져 버렸다. ‘나보다 더 강한 이’라는 것은 칭호는 아니지만 고대 유다교에서 하느님께 드린 표현이었다.

2. 성전에 의한 구원과 예수의 호칭

70년 이전에 계약과 구원은 성전을 통하여 이루어지며 유혈제사는 죄의 용서와 관련되었다. 예수가 성전을 통한 구원의 제도와 유혈제사를 거부한 것은 구원은 제도가 아니라 인자의 인격으로부터 가능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성전 관계자, 사두가이파 사람들,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 열혈당원들, 에세네파(쿰란) 사람들 은 비록 성전의 탁월한 지위에 대해서는 거의 대부분 인정하였지만 경우에 따라 다른 입장을 취하였다.

성전문제에 대해 초대 공동체가 갖는 다양한 태도는 그리스도론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반영한다. 예루살렘의 야고보는 모세의 율법과 성전에 충실하였고, 유다-희랍계 그리스도인들은 유혈제사와 우상숭배를 동일시하면서 강력하게 비난하였다. 요한계 공동체는 제사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지만 예수의 성전 출입을 자주 보도한다. 루가는 이스라엘과 새로운 공동체간의 관계를 강조하면서 성전과 교회의 관계를 말한다. 이러한 다양한 태도는 구원론적이고 그리스도론적인 결과를 유발한다.

예수의 구원행위에 대한 표현은 차이가 있으며 구원론을 기초로 구성하는 수난이야기와 기적 이야기, 복음사가들과 바울로의 구원관, 성전 동기에 대한 해석, 행위의 언어에 표현된 구원론 등 네 가지 방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예수에게 부여된 ‘구원자’ 칭호는 신약성서 전승의 후대에 나타나며 루가와 사목서간, 바울로를 계승하는 교회 안에서만 인정받았다. 바울로에게 이 칭호는 지금 여기의 구원자가 아닌 미래에 오시는 분이며,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은 희랍세계에서 오용된 이유로 이 칭호 사용을 망설였다.

‘사제’ 칭호는 신약성서에서 유일하게 히브리서에만 나타난다. 히브리서 저자는 사제와 대사제 칭호를 이용하여 모든 그리스도론을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집중시키지만 이 칭호는 신약성서 안에 자리를 잡는데 실패하였다. 그리스도에게 부여된 중개자 칭호역시 문제를 야기했다.

‘인자’라는 연사는 칭호로 사용되지 않았지만 예수는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권능을 선언할 때, 수난예고, 십자가 사건과 관련된 말씀을 할 때, 종말론적 문맥 안에서 이 연사를 사용한다. ‘인자’는 총칭적인 사람 일반을 의미하며 ‘나’의 완화된 표현이다. 또 다니엘 7,13과 갖는 관계로 종말론적인 개념으로 볼 때 구원론과 연결되어 있다.

3. 율법과 지혜의 스승예수에 대한 논쟁

1세기 유다의 다양한 그룹들은 율법과 권위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사두가이들은 모세오경과 사제권위를, 바리사이들은 모세 오경과 예언서, 원로들의 전승을 지지하면서 지혜의 스승으로 실제적인 권위를 지녔다. 에세네파들은 오직 자신들의 고유한 전승만을 지지하며 정의의 스승이 권위를 발휘하였다.

이처럼 분열된 상황에서 예수는 권위를 가진 사람으로 자처했고 그의 행위의 규범을 자신의 권위로 확언하였다.

율법에 대한 신약성서의 강조점은 요소마다 다르다. 예루살렘의 유다계 그리스도인의 배경, 유다-희랍계 배경, 그 밖의 다른 경향 따라 입장이 서로 달랐고 같은 공동체 안에서도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은 자신의 배경에 따라 예수를 재유다화 시키기도 하고 반대로 율법과 근본적으로 단절시키기도 하였다.

신약성서의 모든 작품 내지 초대 공동체 전승들은 모두 예수의 권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는 율법을 설교하지 않고 단지 말할 뿐이다. 예수 자신이 스승이었다. 그러나 바울로와 다른 서간의 저자들은 스승이나 랍비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와 반대로 복음사가들은 경우에 따라 강조점을 달리하면서 이 칭호를 사용하였다. 예수 스스로는 이 칭호를 비판하였지만 간접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스승으로 생각했으며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에 대해 말할 때 스승으로 불렀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예수를 한 현자로 보거나 희랍세계의 궤변론자로 보는 것을 거부하였다.

 

제5장 그리스도론적 고백

예수에게 부여된 그리스도, 메시아, 다윗의 아들, 유다인들의 왕, 목자라는 칭호들 사이의 관계에서 하나의 칭호는 이를 흡수한 전승이나 복음, 그리고 이와 더불어 의미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칭호들의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1. 1세기의 메시아 기대

1세기 유다인들은 메시아의 도래를 희망했고 그 기대는 저마다 다양했다. 쿰란 사람들은 종말론적인 예언자와 두 메시아-아론의 메시아, 이스라엘의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렸다. 사두가이파 사제계층이나 유력인사들은 모세오경이 메시아에 대해 침묵하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바리사이들은 로마의 지배 하에 메시아적 동기의 위험성으로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취하였다.

예수의 하느님 나라의 입박한 도래 선포는 다윗 아들의 왕국을 꿈꾸는 메시아 기대를 일으켰다. 메시아 기대는 메시아가 곧 도래하여 다윗초막을 재건하리라는 기대와 천상적인 메시아의 도래로 종말론적으로 하느님의 최종지배를 기대하는 두 가지 경향이 있다.

2. 예수의 메시아 칭호

어록 전승을 전해준 공동체는 직접적인 그리스도 칭호를 사용하지 않았다. 예수도 직접적인 메시아 칭호를 스스로에게 적용하지 않았다. 어록전승의 그리스도론과 바울로와 제자들의 그리스도론도 달랐다. 각 복음서의 메시아 칭호 사용도 각각의 공동체가 당면한 전례적, 신학적 필요에 따라 응답했다.

마르코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전승에서 비롯하며 편집과정에서는 바울로의 영향을 반영한다. 마르코의 그리스도론은 하느님의 아들 동기에 관련된다. 마르코는 직접적이 메시아 동기를 약화시키고 인자 동기를 통해 굴욕을 당하시는 예수의 인간성을 부각시킨다. 그것은 유다계와 희랍계 그리스도인들이 전개한 다양한 운동들을 경험한 로마공동체의 모습을 반영한다. 마태오의 유다-희랍계 공동체는 마르코를 기본으로 하고 어록전승과 다른 전승을 사용하면서 일치의 틀 안에서 모두 종합하였다. 마태오는 새로운 이스라엘에 모든 민족을 부분적으로 편입시키는 온건한 형태의 유다계 그리스도교의 입장을 취한다. 당시 분열된 시대상황에서 마태오의 복음은 공동체 구성원을 일치시키는 신앙고백을 담은 다양한 그리스도론의 모음집이었다. 루가는 다양한 그리스도론적 경향의 통합을 추구하였다. 그의 그리스도론은 일치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였고 그 일치가 마침내 실현된 교회의 상황에서 모든 것을 흡수하고자 하였다. 일치를 추구하는 공동체의 증언과 다양한 담론을 취하고 있는 요한 전승은 루가 전승에 가까운 것으로 추정한다.

복음서에 자주 등장하는 ‘예수’ 이름은 공관복음에서 단지 ‘예수’라고 쓰는 반면, 요한서간문을 비롯한 신약성서의 다른 작품은 예수라는 단순한 표현을 피한다. 바울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유명사처럼 빈번하게 사용하는데 바울로의 예수 표현은 과거가 아닌 오늘의 예수로서 직접적으로 전거의 대상이 되고 그의 말씀과 그의 동작은 중요시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칭호는 메시아, 예언자, 십자가에 달린 분, 왕 등의 이미지를 모두 가장 효과적으로 종합한다. 마태오는 예수의 신원과 기원, 메시아적 기능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 칭호를 선호한다. 마르코복음은 그리스도 칭호를 매우 드물게 사용하는데 그리스도 칭호는 하느님의 아들과 같은 계시의 칭호가 아니며 오히려 반대자들이 이 칭호를 사용하였다. 루가는 그릇된 메시아니즘과 연계된 혼동을 피하면서 처음부터 그리스도 칭호를 사용한다. 요한복음 전승은 그리스도칭호를 광범위하게 사용하되 희랍계 독자들을 위해 그 의미를 해석한다. 바울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고유명사로 쓰면서 메시아적인 위험성이 제거하였고 예수와 그리스도 칭호를 분리할 때는 그의 죽음과 부활의 메시지에 주로 관련되어 있다. 사도는 믿는 이들을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 대신 ‘그리스도 안에서’ 또는 ‘그리스도와 함께’ 라고 표현했고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집에 속한 사람임을 가르켰다.

결론적으로 마태오는 개방적인 유다계 그리스도교의 노선에 따라 고유한 메시아적인 동기를 강하게 주장하였으나 바울로와 그 밖의 다른 신약성서 작가들은 이런 칭호가 남용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정치적으로 위험한 이 칭호를 재해석하였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는 ‘다윗의 아들’로 불리는데 이것은 다윗 가문의 동기를 분명히 한다. 이 칭호는 기적 이야기에 주로 나타나면서 구마와 기적을 행하는 새로운 솔로몬의 이미지를 반영한다. 그에 비해 마르코, 루가는 다윗동기에 대해 중요도를 두지 않는다. 바울로는 이 칭호를 소개하지만 그 의미를 상대화시킨다. 예수의 조상이 다윗이라는 사실이 바울로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고 중요한 것은 예수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들 내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다.

‘유다인들의 왕’ 칭호를 마태오는 메시아적인 의미로 사용했고 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왕권과 연결시켰다. 마르코는 예수의 설교에서 하느님 나라, 하느님 주권을 지적하지만 중요성을 주지 않는다. 루가는 왕이나 왕국을 주제로 취하지만 예수의 왕권은 천상적 차원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강조한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분명 왕이지만 그의 왕국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예수는 왕인가라는 질문에 마태오는 이를 긍정적으로 답하였고 마르코에서는 이 질문을 함정으로 보며 그릇된 고발로 나타낸다. 한편 루가와 요한에서 예수는 왕이지만 이 세상과는 무관한 왕권이다. 바울로는 왕국과 관련한 단어를 매우 드물게 사용한다.

‘목자’ 칭호는 상대적인 중요성만을 갖는다. 이 칭호는 왕권과 관련되면서 또한 마지막 시대의 목자라는 종말론적인 의미도 담겨 있다. 마태오 복음은 이스라엘의 흩어진 무리를 마지막 시간에 모으고 가려내야 할 대상으로 강조한다. 요한의 목자는 그 공동체의 목자를 지칭하고 그의 유일한 무리에 다른 양들이 합류하기를 초대하며, 더욱 영성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메시아, 다윗의 아들, 왕과 같은 직접적인 메시아칭호들은 신약성서 저자들에 따라 서로 다르게 수용되었다. 마태오가 가장 열렬한 메시아주의자였다면 바울로는 그리스도 칭호에서 메시아성을 제거하였다. 마르코는 이 칭호를 받아들이지만 이와 거리를 취하고 십자가 안에서 교정한다. 루가는 유다계 그리스도교 전통을 수용하면서도 메시아 표현을 보다 영성적으로 재해석하여 순수한 의미를 강조하였다. 요한복음에서 그리스도론은 예수의 지존한 지위가 강조되어 나타난다. 각 공동체들의 그리스도론적 강조점은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들에 대해 그들이 취하는 태도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제6장 예수의 지존한 면모 : 아들과 주님

하느님의 아들과 주님 표현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며 예수의 인격이 지니는 다양한 현실에 부합한다. 이것은 인간이자 부활하신 분, 스승이자 주님이신 분, 하느님 앞에 아들이면서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로 인정한 분에 관한 사안이다. 이 두 칭호는 서로 관련되어 그 의미를 풍요롭게 한다. 그리스도 공동체는 일찍이 이 요소들을 종합하였고 공동체에 따라 예수의 어떤 면모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었다.

1. 아들과 하느님의 아들

마르코 복음에서 ‘아들’ 칭호는 세례, 변모 등 계시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등장한다.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는 하느님이 지칭한 아들이고 교회가 고백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그러나 예수자신은 이 칭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들’됨은 예수가 하느님 세계에 속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복종도 의미한다.

마태오 복음의 ‘나의 아들’은 새로운 이스라엘을 대표하며, 예수 자신이 스스로를 아들이라고 지칭한다. 예수는 제자들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도록 파견한다. 마태오 복음 전체에 녹아있는 하느님의 아들 표현은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루가 복음에서 아들 표현은 주로 유년 이야기에 중요하게 강조되어 나타나는데 루가의 작품에서는 주님 칭호가 중심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바울로는 아들로서의 예수의 신원을 강조하지만 그를 아버지와 맺어주는 ‘낳음’의 관계보다 행동적이고 구원론적인 차원을 강조한다.

어록전승에서 하느님의 아들 표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 않으며 대신 하느님의 부성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믿는 이들을 하느님의 아들로 표현한다.

요한복음에서는 하느님의 부성 동기와 예수의 아들됨의 동기 모두 강조된다. 아버지와 그가 파견한 아들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 유일한 아들관계를 강조한다.

‘하느님의 아들’ 연사는 문맥과 출처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한다. 1세기 ‘아들’ 표현은 희랍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로마 황제들의 신격화에 사용되면서 하느님의 아들 칭호에는 정치, 종교적인 의미가 가중되었다. 하느님의 아들 연사는 성서에도 매우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지혜문학에서 의인은 하느님의 정의에 근거한 현자이며 하느님의 아들이다. 외경에서 아들 또는 하느님의 아들 표현은 구약의 성조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하느님의 아들’ 칭호는 왕권과 메시아적 동기를 갖으면서도 여러 가지 의미로 이해되었고 그리스도의 유일한 면모를 가리키기 위해 신약성서의 차원에서 적용되었다. ‘하느님의 아들’ 칭호는 다양한 공동체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적응할 만큼 가변적이다. 어록 전승 공동체, 마르코, 마태오, 루가, 요한, 바울로 등 모든 전승이 이 칭호를 널리 수용하였고 예수에게 적용된 다양한 칭호 중에 유일한 경우에 해당한다. 아들은 예수에게 부여된 칭호 중에 가장 오래되고 동시에 가장 새로운 칭호였다. 메시아, 마르(주님) 같은 기능적인 칭호에 비해 ‘아들’ 칭호는 예수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탁월한 신원호칭이었다. 공동체는 아들로서의 예수의 말씀과 행위를 부활신앙에 비추어 그분의 아들됨을 높이 평가하였고 이로써 아들 칭호는 처음부터 커다란 비중을 지녔다. 아들로서의 예수의 이해는 그리스도교 안에서 부활하신 분의 면모를 내부적으로 파악한 결과였다. 이 칭호는 예수의 다양한 면모들을 분리하지 않으면서 일치시키는 함축성을 지녔다.

2. 주님

‘주님’ 칭호 역시 여러 가지 동기와 공동체의 배경,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예수의 주님 동기는 부활사건과 함께 시작했다.

희랍세계에서 퀴리오스는 집안의 보호자, 종들의 책임자, 집의 소유자(주인)을 가리킨다. 근동에서는 이 칭호를 신들에게 적용하였고 점차로 로마 황제들도 이 칭호를 자신에게 적용하면서 본래 사회적 의미가 1세기 후반부에 오면서 점차 신성화되기 시작하였다.

유다교에는 세 가지 단어 히브리어 ‘아돈’, 히브리어 ‘moreh', 아람어’mar', 히브리어와 아람어 ‘rab'가 희랍어의 퀴리오스와 상응한다.

예루살렘의 유다계 희랍 공동체는 하느님을 퀴리오스에 칭했지만 이 단어의 정치적이고 우상숭배적인 의미 때문에 성서를 인용하는 경우가 아니면 하느님께 사용하지 않았다.

마르코는 예수를 너무 직접적인 그리스도론적인 인물로 혼동하는 것을 피하고자 주님 칭호를 거의 강조하지 않는다. 마르코 복음에서는 아들로서의 예수의 신원은 부각되는 반면, 다른 칭호는 그렇지 못하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각인된 주인 칭호는 예수가 설교하는 위계질서의 전복과는 다른 방향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루가 복음에서 퀴리오스 칭호는 본래의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나타난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하느님 자신을 가리키는 경우가 아니면 이 칭호를 루가 방식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주인 내지 보호자라는 가벼운 의미로 이 칭호를 사용한다. 마태오는 하느님 주님과 전혀 혼동하지 않으면서 기도 중에 예수를 주님으로 불렀던 안티오키아의 유다-희랍계 교회의 용례를 반영한다. 요한복음에서 주님 칭호는 믿는 이들에 의해 고백되고 예수 자신이 받아들였으며 마침내 부활 때 제자들에 의해 온전히 인정되었다. 바울로는 190번이나 주님 칭호를 사용하는데 ‘예수’ 내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쓴다. 사도는 주님 칭호 안에 모든 신앙고백을 집약하며 성령의 영향 안에서만 올바르게 고백할 수 있음을 중시하였다. 바울로는 예수의 주권을 확인하는 것을 부활한 분의 죽음으로 보며 이 칭호를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여과시켰다.

팔레스타인 공동체에서 비롯된 ‘마르’ 칭호는 희랍권의 메시아적 공동체에 ‘퀴리오스’로 전이되었다. 그러나 초기 신자들에게 ‘마라나 타’ 연사의 ‘마르’는 신적의미보다 구원론적 호소였다.

필립비 찬가는 주님으로서의 예수에 대한 보편적인 신앙고백으로 예수를 주님으로 부르는 동시에 하느님의 새 이름인 ‘하느님 아버지’와의 거리를 유지한다. 필립비찬가는 유다계 그리스도교에 기원을 둔 전례적 기법의 운율을 가진 찬가이며, 히브리적 역사주의를 반영한다. 하느님 아들 칭호가 그러했듯이 유일신주의를 둘러싼 논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에 대해서 행위의 언어로 모든 것을 말하되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을 손상시키지 않으려 했다.

 

제7장 예수의 이름을 찾아서

예수에게 걸맞는 이름을 찾는 일, 예수가 말하는 분의 이름을 찾는 일은 성서신학의 주제이다. 신약성서의 관점에서 예수의 면모는 그가 선포하는 분과의 관계 안에서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으며 성령만이 이러한 담론을 진실하게 한다.

초대교회 신자들이 어떻게 예수의 신성을 말하고, 예수의 신성과 인성의 차이를 이해했는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격렬하게 진행된 신학적 그리스도론적인 논쟁으로 알 수 있다.

유일신 신앙이 충실하게 남아있던 초대 교회에서 예수는 두 번째 하느님이 아니었다.

1. 몇 가지 확인된 사실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두세대에 걸친 짧은 시간 안에 예수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고백하려했다. 다양한 그리스도론적 언어와 표현이 등장했지만 어떤 칭호도 예수의 면모를 완전히 드러내지 못했고 각 그룹은 자신의 고유한 처지와 선교의 필요성에 따라 나름대로 예수를 고백했고 다른 칭호들도 이차적인 차원에서 중요성을 인정받았다.

공관복음 문제 또는 네 복음서간의 상호관계의 연구는 예수에 관한 다양한 표상이 상호 교환되어 그리스도론적으로 완숙해지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각 복음서의 공동체가 특정한 그리스도론을 선호하면서 다른 복음서의 그리스도론적 형식에 침묵하거나 무력화시키고 또는 새로운 의미로 편입시킨다. 이스라엘을 선교대상으로 보는 공동체는 메시아적인 동기를 강조하고 다른 공동체는 직접적인 메시아적 칭호를 받아들이되 그것을 보편적인 차원으로 확대시킨다. 일부 칭호들이 폐기되고 다른 칭호들은 계속해서 확대되면서 마지막으로 가장 성공한 칭호들은 가장 다양한 상황에 적용될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특히 하느님의 아들과 주님 칭호는 예수의 인간성과 동시에 하느님의 신비로 개방된 예수의 고유성을 표상하는데 적절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아들 내지 하느님의 아들 칭호는 하느님과 예수의 관계를 일종의 종속주의 개념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종속주의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은 예수를 또 다른 신, 즉 제2의 하느님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초대 신자들은 이 점을 전적으로 거부하였다.

예수의 신성에 대해 공동체마다 이해가 서로 달랐지만 부활 아침의 체험은 예수의 신성에 대해 근원적인 기준으로 작용했다. 예수의 말씀과 동작에 대한 다양한 회상은 결국 일치의 끈으로 묶여졌고 예수의 신성이 다양성 안에서 공동체들이 일치하는 자리였다.

2. 회피할 수 없는 유일신 신앙

1세기 희랍 세계에서 우상숭배는 위협적인 요소였다. 전통종교가 쇠락하면서 황제숭배가 점차 자리를 잡아갔고 세상의 가치들이 교환되는 가운데 종교 혼합주의가 발생하기도 했다. 우상숭배가 유다인들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면서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우상숭배에 대항하는 교리교수가 중요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의 하느님과 구별되는 다른 하느님을 고백하였다면 유다교에서 완전히 분리되어 우상숭배자가 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넓은 의미의 그리스도론 문제는 이스라엘의 한분 하느님에 대한 예수의 유일성을 제대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었다.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그려야 할 예수의 면모는 예수가 자신의 아버지요 자신의 하느님이라고 불렀던 분과 누렸던 유일한 관계를 기초로 유일신 신앙 안에서만 밝혀질 수 있게 되었다.

3. 예수의 지존 면모에 대한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다양한 언어

1세기말 예수의 신성 칭호가 사용되기는 했지만 신약성서에서 직접적으로 선언되는 예수의 신성칭호는 드물었고 위험했다. 전례에서 기원했을 바울로의 필립비찬가를 통해 예수의 지존 면모를 성찰할 수 있다. 또 로마9,5에서는 하느님께 사용되는 전통적인 축복 양식을 수정하여 예수께 적용시킨다. 1고린 8,6에서도 신성호칭이 예수에게 직접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이 본문은 예수에게 붙이는 단순한 신적 칭호를 넘어선다.

성서에서 주로 하느님께 부여된 희랍어‘eis'(유일한), ’monos'(홀로)가 하느님과 주님에게 모두 적용되었고, 마르12,6에서 관계의 유일성을 드러내는 “사랑받는” 수식어로 예수가 유일한 아들, 하느님의 친아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에게 적용된 중개자의 역할에 대해 바울로는 예수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단순한 중개자를 훨씬 능가한다고 보았다. 또한 바울로는 예수가 창조 때 수행한 역할을 십자가의 구원에서 출발해서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창조업적으로 확대하여 기원 문제를 언급한다. 그리고 재림에 관해 논하면서 시원론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전개한다. 그에게는 예수만이 참된 아담이며 새롭게 창조된 인간성의 기원인 것이다.

예수의 신성칭호가 드물게 사용되고 미묘하게 표현됨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동작과 예수 말씀의 권위는 성서 또는 신적 계시의 권위를 능가한다. 직접적으로 죄를 용서해주는 고유한 신적 권한을 주장하는 것 역시 당대의 유다적 상식을 뛰어 넘는다.

예수는 비교되는 인물보다 더 큰 존재로 예수의 칭호는 계속적으로 다양해지고 부풀려졌다. 마침내 그에게 ‘모든 이름위의 이름’ 즉 ‘신명 불가 표현성’에 대한 구약 성서적 동기가 예수에게 적용되었다.

1세기 유다교는 유일신 신앙에 충실히 남아있었지만 천사와 같은 신적인 존재와 옛 성조들이 부각되면서 세상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행위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신자들 역시 예수와 신적 존재들과의 관계에 대해 각 공동체의 다양한 환경에 따라 강조점을 달리하면서 활용하였다. 신약성서의 저자들은 우상숭배에 빠지지 않으면서 적절하게 예수를 지칭하기 위해 이스라엘에 자신들을 연결시키는 유일신 신앙과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복음 선포를 신적 존재를 동원하여 조화시켰다.

성서의 주요 요소들을 그리스도적으로 재해석하고 성서의 언어로 예수의 이름을 말하면서 예수를 새로운 계약의 장소, 시나이의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이것은 당대 신적 호칭을 능가하는 것이었다. 바울로는 이를 재편성하고 순화시키면서 유일신 신앙을 자극하지 않았다. 새로운 시나이 백성인 신앙인들은 그들 역시 변모되어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뵙게 되었고 이제 시나이 동기는 그리스도인 삶의 중심에 자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예수의 칭호들이 생겨난 초기 과정들을 추적하면서 예수의 이름을 찾아가려는 다양한 역동성을 살폈다. 예수의 면모를 인식하기 위해 지속적이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은 예수의 면모가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신비라는 것을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추구되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을 읽고...

sr.박정아 율리아

이 책을 읽기 전에 ‘예수, 주님께서 그리스도이시다’ 라는 칭호와 신앙고백은 나에게 아무런 사고의 걸림돌 없이 조상들과 부모로부터 이어져오는 신앙 안에서 그대로 수용되었었다. 또 교리와 성경에 대해 배우는 것도 이미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 는 사실이 전제되어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확인해 나가고 더 굳건히 하기 위한 교육과정이었다.

샤를르 뻬로 신부의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은 그동안 마땅히 그렇다고 불렀었던 예수의 신성 칭호가 처음부터 쉽게 적용된 것이 아니었고 수많은 사람들과 공동체들이 그들의 사회 안에서 충돌과 서로간의 교정, 수용 등 끊임없는 노력의 과정을 통해 얻어진 소중한 유산임을 바라보게 하는 좋은 기회였다.

그동안 주석학적인 그리스도론보다 영성적인 그리스도론에 대해 더 익숙했던 터라, 이 책을 수월하게 읽기는 어려웠지만 이 책의 짜임새는 ‘예수’에서 ‘그리스도’로 넘어가는 전환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인도해주었다.

저자는 우선 다양한 그리스도론을 전해준 초대 교회공동체를 당시 로마-희랍문화와 유다교의 상황과 함께 살펴보고, 각각의 공동체들이 어떻게 예수의 면모에 대해서 인지하고 그에 따른 칭호들이 어떤 과정 속에서 생겨났고 선포되었는지 고찰해 나갔다.

그리고 예수의 메시아적 칭호들과 예수의 지존한 면모를 나타내는 아들, 주님 칭호를 통해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형언하기 어려운 분’ 을 보다 적절히 지칭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유일신주의가 충실히 남아있던 초대 교회에서 어떻게 신성의 이름이 예수에게 적용되어 가는지를 살펴보게 하였다.

마지막으로 뻬로 신부는 우리 각자에게 “그러면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하겠습니까?” (마르 8,29) 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들 역시 예수께 대한 진정한 칭호를 찾으려는 초대 교회로부터 내려오는 강렬하고 역동적인 흐름으로 초대하고 있다.

즉 초대 교회가 예수에게 보다 완전하고 적절한 칭호를 부여하기 위해 서로 만나고, 교차하고, 교정하면서 그의 칭호를 찾으려 했던 것처럼 2,000년 후 지금 이곳에서 예수는 과연 어떤 이름으로 불려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인간이 ‘결코 다가갈 수 없는 신비’ 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예수에게 부여된 모든 칭호들 중 어느 것도 이미 완전한 것이 아니며, 따라서 어느 한 이름에 머물지 않고 모든 시간 안에서 그 완전함을 추구해야 하며 또 계속해서 새로워져야 하는 과제가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남아있는 것이다.

또한 뻬로 신부는 모든 예수의 칭호와 함께 그것을 전달해준 초대 교회 공동체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초대 신자 공동체들은 각각의 고유한 특성에 따라 다양성을 지니고 있었고 예수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이해를 지녔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다양성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근원을 ‘부활’하신 ‘예수’에 맞추고 있다. 예수의 신적인 면모는 부활사건을 통해 확실히 드러났고 예수 자신이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을 묶어주는 일치의 중심점이 된 것이다.

다양한 공동체의 그리스도론이 한 점, 예수를 근원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참으로 소중한 묵상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 모두 한 지체로 되어 있다면 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실 지체는 많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몸이고 한사람 한사람이 그 지체입니다.” (1고린 13,12-31 참조)

바오로사도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같은 목표점인 ‘예수’를 향해 모인 ‘공동체’로 불렸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저자가 여러 예수의 칭호들을 공동체와 연결시키고 또 하나로 모으는 수렴과정을 보여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마치 ‘하느님의 아들, 주님, 그리스도’ 아래 모인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다양성 안에서 일치’라는 공동체의 ‘새로운’ 이름을 부여해주신 듯 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예수의 호칭과 이름을 찾으면서 이름이 그 존재의 신원을 드러내는 것임을 목격한 것처럼, 서로의 차이, 다양함만을 부르짖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새롭게 부여된 이 이름은 우리의 존재 목적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초대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주님>을 읽으면서 2000년의 시간을 넘어서서 초대 그리스도 공동체의 여러 가지 모습을 바라보면서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시대의 공동체는 과연 어떠한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또 예수께 어떤 칭호를 드릴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시간이었다.

끝으로 저자가 이 책의 마지막에 여운처럼 던진 질문을 지금 나에게도 해보게 된다.

“그러면 당신은 나를 누구라고 하겠습니까?”

2,000년 전 초대 교회의 공동체가 그들이 체험하고 살았던 예수에게 이름을 붙여준 것처럼, 나 역시 나에게 체험되어진 이름을 예수께 드리게 싶다.

‘영원한 신랑이신 예수님’

이 칭호는 이 책에 나오는 다른 메시아적이고 또는 신학적, 교의적, 사목적인 또는 지존칭호는 아니지만, ‘나’ 라는 고유한 한 인간이 체험하고 더불어 살고 있고 또 살고자 고백한 이름이다.

나의 예수님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한순간도 그 눈길을 떼지 않고 바라보고 계시며, 또 강요함 없이 당신의 사랑으로 이끌어 가시는 분이시다. 가끔 그분의 눈길이 부담스러워 숨기도 하고, 때론 그분의 빛에 등을 돌리고 어둠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도 하지만 언제나 당신의 옆자리로 나를 이끌어 주시는 분이심을 고백하게 된다.

“영원한 신랑이신 예수님, 당신은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이십니다.”

초대 교회의 예수-E.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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