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성 국제 영화제가 한창인데
어제는 수녀님들과 신촌에 있는 아트레온에서
이란 영화인 <내가 여자가 된 날>을 보고 왔습니다.
이 짧은 영화안에는 3명의 여자 주인공이 나옵니다.
9살의 어린 하바와 중년의 부인인 아후, 할머니 후라까지...
이란이라는 사회안에서 여자의 일생이 어떠한지 한눈에 보게 되더군요..
보는 내내 가슴 답답함이 있었지만
영화를 본 후에 수녀님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조금씩 새롭고 계속 되돌아 생각하게 되는 느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여자가 된 날>
이란, 2000, 78분, 마르지예 메쉬키니 감독
- 첫번째 이야기
9살에 여자가 된 하바!
9살 생일을 맞으면서 어제와는 다른 삶으로 들어가게 되는 하바.
어제까지는 남자친구들과 신나게 놀수 있었지만
9살이 되면서 이제는 밖에 나갈때 스카프를 쓰고 이젠 길게 늘어뜨리는 차도르를 써야 하는 여자가 된 것이다.
하바에게 와서 계속 놀자고 조르는 남자친구 핫산도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모른채 집으로 돌아가고
할머니에게 정오가 될때까지만 놀수 있다는 허락을 간신히 맞고
시간의 그림자를 알려주는 막대기와 익숙하지 않은 스카프를 머리에 쓴채
핫산에게 가는 하바는 또다른 상황을 맞게 된다.
이제는 핫산이 집에 갇혀서 나올수 없게 되었다.
숙제를 하기 전에는 나갈수 없고 방의 창살안에 갇혀서 하바가 주는 알사탕을 쪽쪽 핥아먹기만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영화는 분명 이란의 여성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감독은 여성만을 초점맞추지 않았다.
이란에서 9살이라는 여자가 되는 시간에 갇히게 되는 하바와 함께
이런 사회속에 똑같이 갇히게 되는 핫산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두번째 이야기
자전거를 타는 여인 아후!
이 두번째 이야기는 쉬지 않고 계속 자전거를 타고 있는 여자 들의 모습과
자전거를 탄 여인 아후를 쫓아오는 말탄 남자 를 보여준다.
아후는 자전거 경주에 나간 여인이다. 하지만 그 남편은 그녀를 말려서 집으로 데려가고자 한다.
하지만 아후는 거부를 하고 이혼을 선언받는다.
계속 자전거를 타는 아후에게 이제는 중매장이 아저씨, 동네 어른들, 아버지... 마지막으로
그녀의 오빠들까지 말타고 등장한다.
그녀의 자전거 질주를 막은 것은 영화속에서는 오빠들이었다. 그녀의 자전거를 빼앗아가버렸으니까...
하지만 세번째 이야기에서 그녀는 계속해서 자전거를 탔다고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해듣는다.
아후는 왜 이혼을 당하고 부족과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으면서도 자전거를 타는 것일까?...
이 사회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자전거패달을 힘차게 밟아도 그녀의 검은 차도르는 그녀의 질주에 대해 저항한다.
아무리 일등으로 달려도 그녀가 달리는 코스는 출구가 없는 트랙일뿐이다.
그래서 아후를 보는 내내 숨이 차고 답답했는지도 모른다.
계속 달리기는 하지만 나갈수 있는 문이 없어 보여서...
- 세번째 이야기
마지막 끈을 풀지 못한 후라..
허리도 제대로 펼수 없는 노년의 후라!
손가락마다 자신이 평생 갖고 싶었지만 가질수 없었던 것들을 끈으로 표시해 묶고서
아이들이 끌고 다니는 인력거를 타고 물건들을 하나씩 산다.
냉장고, 침대, 가스오븐렌지, 웨딩 드레스, 욕조... 찻주전자까지...
하지만 한참 사고나니까 손가락에는 하나의 끈만이 남았는데
그것이 도통 무엇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바닷가에 산 물건들을 모두 펼쳐놓지만 그래도 마지막 끈이 무엇이었는지
알수 없다.
하는수 없이 이 모든 것들을 아이들이 헤엄쳐서 밀고 가는 작은 뗏목에 실고서
푸른 바다로 나아간다.
신나게 쇼핑몰을 다니면서 물건을 사던 후라에게 마지막 끈은 무엇이었을까...
계속 생각이 머물었다.
그러다가 자신을 돕는 아이들에게 자기 아들이 되어달라는 그녀의 말을 떠올리면서
그 마지막 끈은 그녀가 돈으로는 살수 없는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9살 여자가 된 순간부터 자유를 잃었지만
할머니가 된 이제 자유롭게 되었다해도 다시 되돌아갈수 없는 시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녀는 단지 아이들이 밀어주는 인력거에 타고, 아이들이 떠받쳐주는 뗏목에 타고서 갈수 밖에 없다.
이러한 후라를 멀리 바닷가에서 바라보는 9살 소녀 하바의 시선은
한편으로는 자신의 미래를 보는 듯이 씁쓸해보이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 자신의 스카프를 남자아이들의 뱃놀이에 쓰게 내어주는 모습안에서
그런 굴레를 벗어날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 있는 그들과 여기 있는 나를 생각하면서
같은 시대안에서 참 다른 사회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느낀다.
그리곤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하지만 우리 사회역시 그들의 차도르와 비슷한 또다른 굴레들이 있음을 분명 느끼면서
그들과 내가 똑같은 여자라는 사실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그저 남얘기로 치부하고 넘어가게 하지는 않는 것이다.